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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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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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67년 10월 7일 | (57세)|||
출신지 |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시 | |||
신장 | 173 cm | |||
체중 | 72 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91년 | |||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1차 지명(쌍방울 레이더스) | |||
첫 출장 | KBO / 1991년 4월 5일 대전 대 빙그레전 선발 | |||
마지막 경기 | KBO / 2005년 4월 13일 광주 대 삼성전 | |||
획득 타이틀 | ||||
계약금 | 4,500만원 | |||
경력 | ||||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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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
아시아선수권 | 1989년 서울 2003년 삿포로 | |||
조규제(曺圭帝, 1967년 10월 7일 ~ )는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자, 현 제주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이다. 원래 오른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할 무렵 왼손잡이 글러브를 사용해서 좌투우타가 됐다. 1991년에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인 1991년에는 49경기에 등판해 9승 7패, 27세이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후 마무리 투수로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완산 특급(完山特急)'이라고 불렸다.[1] 현역 후반기에는 주로 좌완 원포인트 스페셜리스트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던 2003년 시즌 직후 13년 만에 3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그 해 11월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편집]아마추어 시절
[편집]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했다.[2] 1986년 전기 고교 야구에서 군산상고의 우승을 이끌며 주목받기 시작해[3], 같은 해에 우수 투수 타이틀을 따냈다.[4] 같은 해 해태 타이거즈와 연세대학교가 그를 데려가기 위해 경쟁을 벌였는데[5][6][7], 그는 조계현과 함께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1987학번)로 진학했다.[8] 1989년에는 아마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됐으며[9], 같은 해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다.[10]
1991년 드래프트에서 1990년에 새로 창단한 팀에 1차로 지명됐다.[11] 입단 후 바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빙그레 이글스와의 개막전에서 6이닝 동안 1피안타만 허용하며 선발 승을 거두며 주목받기 시작했다.[12] 6월까지 14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하며[13], 같은 신인이던 김기태와의 경쟁 끝에 신인왕과 세이브왕을 수상했다.[14][15] 1992년에는 100% 인상된 연봉으로 재계약했다.[16] 당시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던 빙그레 이글스의 송진우와 구원 경쟁을 펼쳤으나[17], 시즌 초반에 부상을 당해 한동안 마운드에 올라오지 못했다.[18] 이후 마무리로 돌아선 해태의 선동열, LG의 김용수, 태평양의 정명원과 세이브 경쟁을 펼쳤다. 1994년 4월 22일에 같은 팀의 선발 투수 성영재의 12연패 기록을 끊었다.[19] 1995년에는 부상으로 거의 등판하지 못했지만, 1996년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지도 하에 김현욱, 김원형, 김기덕과 함께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20] 1997년에 팀이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21]
1998년에 자금난에 허덕이던 쌍방울 레이더스는[22] 그를 트레이드하면서 투수 박정현, 가내영과 현금 3억원을 받았다.[23]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측은 현금 트레이드를 부인했으나 기자들의 추궁에 현금을 받았음을 시인했다.[24] 8월 21일에 선발 등판한 그는 7년 만에 선발승을 기록했으며[25] 그 해 3경기에 선발 등판해 3승을 거뒀다. LG와의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26] 1998년 주전 마무리였던 조 스트롱이 다음 해인 1999년에 미국으로 돌아가자 선발에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으나[27] 부상으로 박경완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28] 팀의 주전 마무리는 선발로 활동하다가 3연패를 기록했던 정명원으로[29] 낙점됐고 그는 선발로 재전향해 5선발승을 기록했다. 2000년에 위재영이 39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새로운 마무리로 떠오르면서 입지가 좁아졌고[30][31], 마일영의 입단과 9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시즌 후 조웅천과 함께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됐다.[32]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33][34] 이적 첫 해인 2001년에는 시즌 초반부터 마무리로 활동했지만[35] 시즌 중반 이후 몇 차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자 6월 28일 LG 트윈스전부터 선발로 활동했는데 이 경기에서 선발 승을 기록했다.[36] 같은 해 10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을 기록했다. 팀에서의 마지막 해인 2002년에는 시즌 전에 선발로 내정됐으나[37] 마무리를 맡았고, 블론세이브를 몇 차례 기록하자 6월 초부터 선발로 복귀했지만 같은 달 19일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한 후[38] 허벅지 근육통을 호소해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7일 두산 베어스와의 더블 헤더 때 복귀했으나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다. 2002년에 8경기에 선발 등판해 1승을 기록했다.
2003년 시즌 전 박경완이 FA를 선언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며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지명돼 복귀했다.[39], 2003년에 팀의 3번째 우승 멤버가 됐으며,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40] 12월에 2년간 4억 5,000만원의 조건으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41]
불펜으로 활동하다가 2005년 11월 4일에 홍현우와 함께 방출돼 은퇴했다.[42]
야구선수 은퇴 후
[편집]2006년 1월 현대 유니콘스의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됐다.[43] 그 후,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로 넘어가 우리 히어로즈가 인계된 뒤에도 투수코치로 활동했다.[44] 2009년 10월에는 재활군 코치로 보직을 옮겼다.[45] 2010년 10월 23일 히어로즈와의 코칭스태프 계약을 끝내고 KIA 타이거즈와 코칭스태프 계약을 맺었으며[46], 불펜코치로 활동했다. 그러나 2013년 KIA 타이거즈가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2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됐고, 시즌 말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KIA 타이거즈를 떠난 후 LG 트윈스의 2군 코치로 합류했으나[47]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중 해임됐다. 2016년에 삼성 라이온즈의 잔류군 투수코치로 임명되었고, 2017년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021 시즌 후 삼성과 결별한 그는 삼성 2군에서 코치로 함께한 적이 있는 박재현의 부름을 받아 제주고등학교의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출신 학교
[편집]통산 기록
[편집]년도 | 팀 | 포지션 | 평균자책 | 경기수 | 완투 | 완봉 | 승 | 패 | 세 | 홀드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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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쌍방울 | 마무리 투수 | 1.64 | 49 | 0 | 0 | 9 | 7 | 27 | 0 | 142 2/3 | 70 | 5 | 58 | 3 | 133 | 30 | 26 | 신인왕, 구원왕 |
1992 | 3.17 | 30 | 0 | 0 | 7 | 7 | 8 | 0 | 54 | 48 | 5 | 24 | 2 | 65 | 25 | 19 | |||
1993 | 1.42 | 41 | 0 | 0 | 1 | 4 | 23 | 0 | 88 2/3 | 51 | 5 | 33 | 4 | 96 | 17 | 14 | |||
1994 | 2.39 | 44 | 0 | 0 | 2 | 8 | 24 | 0 | 98 | 69 | 5 | 38 | 5 | 93 | 28 | 26 | |||
1995 | 중간 계투 | 5.06 | 8 | 0 | 0 | 0 | 1 | 3 | 0 | 10 2/3 | 11 | 2 | 6 | 1 | 9 | 6 | 6 | ||
1996 | 마무리 투수 | 1.81 | 48 | 0 | 0 | 5 | 5 | 20 | 0 | 59 2/3 | 41 | 3 | 24 | 4 | 74 | 12 | 12 | ||
1997 | 2.90 | 52 | 0 | 0 | 4 | 6 | 28 | 0 | 77 2/3 | 64 | 4 | 23 | 4 | 74 | 25 | 25 | |||
1998 | 현대 | 중간 계투 | 4.18 | 40 | 0 | 0 | 5 | 4 | 2 | 0 | 56 | 65 | 8 | 16 | 1 | 40 | 28 | 26 | 현대 이적 후 한국시리즈 팀 우승 기여 |
1999 | 선발 투수 | 5.95 | 17 | 0 | 0 | 6 | 2 | 2 | 0 | 0 | 56 | 62 | 9 | 20 | 3 | 52 | 37 | ||
2000 | 중간 계투 | 2.08 | 9 | 0 | 0 | 0 | 0 | 0 | 3 | 4 1/3 | 2 | 0 | 2 | 0 | 4 | 1 | 1 | ||
2001 | SK | 3.55 | 46 | 0 | 0 | 8 | 9 | 9 | 3 | 106 1/3 | 90 | 12 | 35 | 3 | 75 | 45 | 42 | 조웅천과 함께 이적 | |
2002 | 4.23 | 46 | 0 | 0 | 6 | 8 | 6 | 3 | 78 2/3 | 81 | 13 | 27 | 10 | 64 | 40 | 37 | |||
2003 | 현대 | 5.63 | 36 | 0 | 0 | 0 | 3 | 0 | 4 | 40 | 39 | 6 | 32 | 4 | 41 | 26 | 25 | ||
2004 | KIA | 2.14 | 38 | 0 | 0 | 1 | 0 | 1 | 5 | 21 | 11 | 1 | 4 | 1 | 18 | 5 | 5 | 마해영과 함께 이적 | |
2005 | 36.00 | 4 | 0 | 0 | 0 | 0 | 0 | 0 | 1 | 5 | 2 | 2 | 1 | 0 | 4 | 4 | |||
통산 | 15시즌 | 투수 | 3.08 | 508 | 0 | 0 | 54 | 64 | 153 | 18 | 894 1/3 | 709 | 80 | 344 | 46 | 838 | 329 | 305 |
주요 기록
[편집]- 진한 바탕은 KBO 리그 최초 기록임
기록 | 연도 | 날짜 | 소속 | 구장 | 상대팀 | 상대 타자 | 경기 결과 | 경기수 | 달성 당시 나이 | 기타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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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경기 100세이브 (207경기) |
1996년 | 8월 3일 | 쌍방울 | 사직 | 롯데 | 2005년 조용준이 경신 | [48] | ||||
500경기 출장 | 2004년 | 9월 14일 | KIA | 광주 | 한화 | 36세 11개월 7일 | 역대 10번째 |
각주
[편집]- ↑ 잊혀진 역사 쌍방울 레이더스, 네이버 박동희 칼럼, 2010년 1월 16일.
- ↑ 대붕기 고교야구 - 군산상·대구상 나란히 4강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5년 7월 26일.
- ↑ 군산상고 우승 주역 투수 조규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4월 28일.
- ↑ 최우수 선수에 권순구 외…,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10월 18일.
- ↑ 조규제 → 연세대 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10월 21일.
- ↑ 고졸 6명 지명,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11월 8일.
- ↑ 타이거즈, 조규제 입단 교섭,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6년 11월 10일.]
- ↑ 22개 전기대 체육특기자 876명 뽑아,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7년 1월 8일.
- ↑ 아마 야구 대표팀 전면 "물갈이"…,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6월 6일.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조규제 완봉승…,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9년 9월 18일.
- ↑ 쌍방울, 조규제 1차 지명,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1월 6일.
- ↑ 쌍방울의 "싱싱한 팔" 조규제,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4월 11일.
- ↑ '어려울 때마다 불러다오' 조규제, 14연속 구원승, 동아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6월 12일.
- ↑ 장종훈 MVP·조규제 신인왕 등극,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1년 10월 9일.
- ↑ 제 9구단 창단…쌍방울의 10년은 어땠나 Archived 2013년 11월 12일 - 웨이백 머신, 스포츠서울, 2011년 3월 13일.
- ↑ 쌍방울 조규제 1백% 이상 몸값 사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1월 9일)
- ↑ 빙그레 송진우 - 쌍방울 조규제 세이브왕 정면 대결,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4월 5일.
- ↑ 프로야구 마운드가 무너진다,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2년 6월 2일.
- ↑ "1년 만에 1승"… 억대 투수의 눈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4년 4월 23일.
- ↑ 박경완 "왕방울 결승포",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6년 9월 18일.
- ↑ 최대 전력으로 최대 효과…,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7년 10월 6일.
- ↑ 돈과의 싸움이 더 힘든 쌍방울,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8월 4일.
- ↑ 쌍방울 조규제·LG 박종호 트레이드 영입…,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8월 1일.
- ↑ 현대·쌍방울 돈거래 숨겨 구설수,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8월 1일.
- ↑ 조규제, 7년만의 '선발승', 1998년 8월 22일.
- ↑ 프로야구 창단 3년만의 천하통일, 비결은…,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8년 11월 2일.
- ↑ 이준호 (1999년 5월 24일). “정명원 “내 전공은 역시 마무리””. 문화일보. 2019년 4월 23일에 확인함.
- ↑ 조규제 등 치료차 미국행,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0월 8일.
- ↑ 이준호 (1999년 5월 24일). “정명원 “내 전공은 역시 마무리””. 문화일보. 2019년 4월 23일에 확인함.
- ↑ 마무리 변신 위재영, "현대 수호신", 동아일보, 2000년 7월 30일.
- ↑ 위재영, '현대 1등 공신', 한국일보, 2000년 8월 9일.
- ↑ 강혁-조규제 SK 유니폼 입는다, 한국일보, 2000년 12월 14일.
- ↑ SK, '불끌 소방수가 없다', 한국일보, 2001년 6월 1일.
- ↑ SK,믿는 도끼에 발등?, 국민일보, 2002년 4월 19일.
- ↑ 고경봉 (2001년 6월 12일). “SK "불지르는 소방수때문에..." .. 5연패 늪서 허우적..프로야구”. 한국경제. 2020년 9월 3일에 확인함.
- ↑ 장환수 (2001년 6월 29일). “[프로야구]'구원파'의 화려한 변신”. 동아일보. 2020년 9월 3일에 확인함.
- ↑ 신화섭 (2002년 6월 9일). “SK 이승호 `다시 붙박이 소방수`”. 일간스포츠. 2020년 9월 3일에 확인함.
- ↑ 신화섭 (2002년 6월 20일). “조규제 부상 2군행… SK 선발진 비상”. 일간스포츠. 2020년 9월 3일에 확인함.
- ↑ 조규제 3년 만에 다시 현대로, 동아일보, 2003년 1월 16일.
- ↑ KBO, FA 자격 선수 24명 공시, 연합뉴스, 2003년 10월 30일.
- ↑ FA 조규제, 기아 입단, YTN, 2003년 12월 5일.
- ↑ 기아, '왕년의 스타' 홍현우ㆍ조규제 전격 방출, 오마이뉴스, 2005년 11월 5일.
- ↑ 현대, 1990년대 투타 스타 출신 코치 영입, OSEN, 2006년 1월 4일.
- ↑ 센테니얼, 코칭스태프 구성…13일부터 제주 전훈[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OSEN, 2008년 2월 12일.
- ↑ 히어로즈 김동수, 배터리 코치로 선임, 노컷뉴스, 2009년 10월 14일.
- ↑ KIA, 명 소방수 출신 조규제 코치 영입, 이데일리, 2010년 10월 24일.
- ↑ NC 최경환, LG 조규제 합류 '코치 대란' 시작되나 - 스포츠서울
- ↑ 스포츠부 (1996년 8월 4일). “진상봉 연타석 홈런砲(포)”. 조선일보. 14면면. 1996년 8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