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분
대명분(스코틀랜드 게일어: An t-Adhbhar Mòr[1], 영어: Great Cause)이란 1286년 알바 왕국(오늘날의 스코틀랜드)의 왕 알락산다르 3세가 낙마사하고, 그 유일한 적손인 노르웨이 왕녀 마르그레트 알렉산데르스도티르가 요절하면서 공위기가 시작되자 스코틀랜드 왕위를 두고 벌어진 분쟁이다.
1290년, 마르그레트(당시 3세)를 보정하던 스코틀랜드의 수호자들은 잉글랜드 왕세자 에드워드 캐너번(당시 5세)과 마르그레트의 약혼을 주선했다(버검 조약). 이 조약에서는 여러 가지를 규정하면서, 마르그레트와 에드워드의 자식이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왕위를 모두 물려받을 것이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속국이 아니며 독립국으로서 동군연합을 이룰 것이라고 규정했다.[2] 이것은 명백히 스코틀랜드의 독립주권을 보존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6일, 마르그레트가 오크니에서 죽으면서[3] 스코틀랜드 왕위는 공석이 되었다. 가장 유력한 왕위요구자는 갤러웨이의 존 발리올이었다. 존은 강력한 에드워드 1세의 대행자로 스코틀랜드에 파견되어 있던 더럼 주교 안토니 베크와 동맹하고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후계자(heir of Scotland)"라고 칭했다.[4] 또다른 강력한 요구자는 애넌데일의 로버트 5세 드 브루스였다. 로버트는 마르그레트의 대관식 장소로 예정되었던 장소에 군대를 모았고, 마르 백작 돔날 1세 막 일리엄과 애솔 백작 데이비드 1세 드 스트라스보기 역시 로버트의 편을 들어 군사를 모은다는 소문이 팽배했다.[5] 스코틀랜드는 계승권 내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존과 로버트 외에도 14명의 후보자가 난립했는데, 모두들 크든 작던 혈연적 명분이 있었다.
수호자들은 왕위계승자를 가리기 위해 궁정에서 104인의 방청객이 참여한 회의를 열었고, 마르그레트의 예비 시아버지였던 에드워드 1세에게 그 진행을 요청했다. 에드워드 1세는 1292년 11월 17일 자기 아들 에드워드 캐너번에게 다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을 조건으로 존 발리올을 지지했고,[4] 이 결정을 스코트인 귀족들 다수가 수용하면서 존이 왕위에 올라 공위기는 일단락되었다.
각주
[편집]- ↑ http://www.bbc.co.uk/education/guides/zqv2pv4/revision/6
- ↑ Powicke, Maurice, The Thirteenth Century, 1216–1307, 1963, ISBN 0-19-821708-0
- ↑ “Queen Margaret, Maid of Norway”. Undiscovered Scotland.
- ↑ 가 나 Stevenson, J., Documents Illustrative of the History of Scotland, 1870
- ↑ Barrow, Geoffrey W.S., Robert Bruce & The Community of The Realm of Scotland, 1988, ISBN 0-85224-6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