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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취재

‘2030 남성’ 미개하고, 생각 없고, 양심조차 없다고 한다

작년 연말 국회 앞 광장의 주역은 단연 2030 여성이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에 촛불 대신 형형색색 응원봉을 들었고 민중가요 대신 K팝을 불렀다. 그렇게 ‘신나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그곳에 2030 남성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응원봉 대신 쇠파이프를 든 2030 남성이 클로즈업됐다. 서울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닥치는 대로 기물을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고, 판사를 협박했다. 광화문과 여의도의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과격한 언어를 내뱉는 젊은 남성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선명한 대비는 2030 남성에 ‘극우’라는 두터운 낙인을 찍었다. 여기저기서 조롱과 비하를 퍼부었다. “머리는 굴리지만 사유는 없다.”(박구용 더불어민주당 전 교육연수원장) “역사 교육의 부재 탓이다.”(진보 역사 강사 황현필) 이런 극단적 언어야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이성적 집단의 준엄한 꾸짖음은 더 아팠을 것이다. 왜 탄핵 찬성 집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느냐고, 너희들은 정의감도 없느냐고, 급기야 왜 보수(극우가 아니라)가 됐냐고 따지고 묻고 질책한다. 이들의 비판을 한데 모으면 이렇다. 2030 남성은 미개하고, 생각도 없고, 양심조차 없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2030 남성의 악마적인 성격을 규정하려는 담론이 쏟아진다. 정말 2030 남성은 이렇게 난도질당해도 될 만큼 ‘나쁜 집단’인 걸까. 달궈진 광장에서 한발 벗어나 볼 필요가 있다. ‘20대 남성’ ‘30대 여성’ 식으로 성·연령을 결합해 분석이 가능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월별로 통합해 공개하는 자료가 유일하다. 표본이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해서 그렇다. 작년 1월부터의 조사 결과(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2030 남성의 인식은 정치권과 미디어가 멋대로 재단한 성격과는 간극이 크다. 먼저 이들의 정치성향부터 보자. 작년 연간으로 볼 때 20대(18~29세) 남성 중 자신의 주관적 정치성향을 보수라 답한 이들은 31%다. 진보(19%)를 크게 앞선 건 분명하다. 하지만 보수 응답은 전체 평균(30%)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20대 여성(17%)과 대비돼 도드라질 뿐이다. 중도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그보다 높은 37%다. 탄핵 정국 영향을 받은 올해는 보수(1월 40%, 2월 39%) 응답이 좀 더 늘어나긴 했지만 큰 흐름은 비슷하다. ①보수 우위일 뿐 극우로 일반화하는 건 근거 없는 왜곡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 서부지법 폭도가 이들을 대표해도 무방할 만큼 윤 대통령 탄핵을 결사 반대하지도 않는다. ②탄핵 찬성 비율이 전체보다 조금 낮을 뿐, 반대보다는 늘 앞섰다. 20대 남성의 경우 탄핵 찬성이 1월 53%, 2월 51%다. 반대(1월 35%, 2월 36%)를 크게 웃돈다. 30대 남성은 격차가 더 많다. 찬성 비율이 62%(1월), 55%(2월)다. 반대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뿐이다. 계엄 이전에는 달랐을까. 그들이 2022년 대선에서 표를 몰아줬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지했을까. 그렇지 않다. ③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평균보다 훨씬 박한 평가를 해왔다. 작년 연간으로 볼 때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0대 남성 19%, 30대 남성 18%였다. 2030 여성(20대 11%, 30대 14%)에 비해선 높지만, 전체 평균(26%)은 한참 밑돈다. 다른 세대들과 비교하면 윤 대통령 지지도가 많이 낮았다는 얘기다. 특히 계엄 직전인 11월에는 10%(전체 19%), 직후인 12월엔 7%(전체 13%)로 급전직하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이런 2030 남성을 “탄핵을 찬성하는 중도보수 성향의 스윙보터”로 규정했다. 2030 남성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봤다. 실제 그들은 서부지법 폭도와 한 묶음으로 일반화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 계엄에 대한 생각은요.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채 상병 사건을 보고, 또 불법계엄에 투입된 군인들의 고뇌를 보고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구진우·가명·28) “전 보수 성향이 조금 더 강하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한 계엄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요. 정치성향과는 무관하죠.”(윤정우·가명·32) - 서부지법 폭도 중에 2030 남성이 많았던 건 사실인데요. “범죄자는 범죄자, 폭도는 폭도일 뿐이죠. 그걸 한 세대, 한 성별로 뭉뚱그리는 게 정상적인가요?” (김재영·가명·35) “법원 파괴에는 물리적 행사력이 필요하잖아요. 젊은 남성이 더 적합했겠죠. 그게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거고요.”(최병록·36) - ‘2030 남성 =극우’라는 일반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보나요. “정치권과 미디어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한쪽은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다른 쪽은 자신들의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2030 여성 결집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요. 광장 밖 중도층은 안중에 없는 거죠.” (윤정우) 그럼에도 그들은 계엄 직후 탄핵 촉구 집회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시생활인구데이터 추산 결과 20대 여성이 남성보다 5배 이상 많았다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계엄이 부당하다 여기고 탄핵에도 찬성하는데 왜 그런 걸까. 이를 보려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들의 정당 선호도를 보자. ④민주당을 싫어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 지지율 또한 높지 않다. 작년 연간 2030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체 평균(32%)을 크게 밑돈다. 30대는 27%, 특히 20대는 19%에 불과하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율 또한 전체(32%)보다 낮다. 20대(27%)와 30대(28%) 모두 그렇다. 탄핵 정국에 접어든 올 들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소폭 높아지긴 했지만(20대 1월 37%, 2월 36%) 딱 전체 평균 수준이다. 대신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전 세대 중 압도적으로 높다. 20대 남성의 경우 40% 안팎을 오간다. 민주당을 기피하는 것 이상으로 ⑤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싫어하는 것 또한 확실하다. 1월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31%가 이 대표를 꼽을 때 20대 남성은 단 12%만 이 대표를 택했다. 2월 역시 비슷(전체 34% vs. 20대 남성 13%)하다. 그러니까 민주당과 이 대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탄핵 찬성 집회에 나서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여기에 반(反)페미니즘 정서, 반중 인식 등이 단단히 엮여 있음을 알 수 있다. - 탄핵에 찬성한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박근혜 정부 당시 촛불집회에는 나갔거든요. 이번에도 나갈 마음이 있긴 했는데 특정 정당을 위하는 일이 될까 봐서요. 그렇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는 싫거든요.”(김재영) “변명 같기는 한데요. 민주당과 여성들이 단단히 결집한 곳에서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더라고요. 들러리를 서는 것 같다고 해야 하려나.” (이기범·30) -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왜 다른 세대, 다른 성별에 비해 크다고 보나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민주당에서 여성 인권이나 페미니즘 관련 공약을 많이 내놓는 것에 대한 반감이 제일 큰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일정 정도 필요하다고 여기지만요.” (정우진·가명·33) “문재인 정부 이후 이어져온 친중 정책도 한 원인이라고 봐요. 이재명 대표가 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셰셰(고맙다)’ 발언을 한 게 대표적이죠." (이순혁·29) “우리 세대를 모두 ‘일베’로 치부하고 게임만 하며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취급하니 반발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소외됐다는 푸념을 하는 거예요.” (김재영) 실제 2030인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의 진단도 비슷하다. 그는 “2030 남성들이 진보 진영에 갖고 있는 핵심적인 반감 정서 중 하나가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것”이라며 “탄핵에 찬성하지만 그 과실을 민주당과 이 대표가 가져갈 텐데 여기에 들러리를 서기는 싫어 관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 해석했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도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구체적인 정책과 무관하게 선언적인 친여성 정책을 보며 적대적 세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게 2022년 대선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점점 더 자신들을 악마화한다고 여기는 게 민주당에 대한 불신, 그리고 탄핵 촉구 집회에 대한 머뭇거림으로 이어졌다”는 게 정 원장의 생각이다. 최근 10년여간 2030 여성과 남성의 누적된 경험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여성들은 줄곧 광장의 주역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 운동, 텔레그램 n번방, 교제폭력 등 많은 젠더 의제에 연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함께 토론하고 공감했고, 그게 광장의 동력이 됐다. 반면 2030 남성이 연대할 의제는 많지 않았다. 당연히 광장에서의 축적된 경험도 없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왓투세이(What to say·무엇을 말하느냐) 만큼이나 하우투세이(How to say·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고들 얘기한다”며 “탄핵 찬성 여부를 떠나 남녀 간 벽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같은 세대 여성들이 탄핵 집회에 주역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정서적 장벽을 느꼈을 수 있다”고 봤다. 미래세대가 좌든 우든 극단으로 치닫는 건 경계함이 마땅하다. 그게 서부지법 사태처럼 법치를 부정하고 폭력으로 이어지는 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진보라 욕먹을 이유 없듯, 보수 또한 그렇다. 두둔할 것도 아니지만 비난하고 조롱하고 훈계하려고만 하는 건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양승훈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 왜 탄핵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지 않았느냐고 일각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냅니다. “소위 ‘86세대’나 그 언저리 정치인들의 인식이죠. 그러니 거부감과 반감이 점점 더 커집니다. 물론 그들의 보수화가 분석의 대상일 수는 있겠죠. 학교에서 남학생들하고 얘기를 해보니 ‘우리들에게 쥐어줄 응원봉이 없다’고 하더군요.” - 유인이 부족하다는 뜻일 텐데요. “윗세대에 비해 취업도, 내집 마련도 다 어려워졌잖아요.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여성들의 경력단절 같은 문제에 지지를 보낼 여유가 없는 거죠. 가뜩이나 이들 세대에서는 여성이 공부나 진학, 취업 등 모든 면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으니 아버지 세대의 부채의식을 대신 떠안을 이유를 못 찾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 그들이 주도하는 탄핵 광장과 거리를 둔 측면이 있죠.” - 어떤 응원봉을 쥐어줘야 할까요. “정치적 효능감이 있어야 돼요. 이들을 단순히 정치적 도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직업 탐색이나 노동시장 문제 해결 등 그들의 절박한 관심사에 대해 적극적인 마주침이 필요합니다.” 2030 여성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스스로 응원봉을 찾아 들었는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이기적이냐고 다그칠 것만은 아니다. 최병천 소장은 “역지사지의 자세로 그들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것, 그리고 2030 남녀의 공통분모를 찾아볼 것”을 주문한다. 그들이 왜 그런 인식을 갖게 됐는지 편견 없이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감의 영역은 많다. 양 교수는 “젠더 문제 등 한두 가지를 제외하고 보면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대부분 의제에서 동세대 여성들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고 했고, 이동수 대표는 “반페미니즘 정서와는 별개로 성평등 의식 면에서는 아버지 세대들보다 훨씬 앞서 있는 건 맞다”고 봤다. "그들이 생각이 없다는 건 대단한 오산"(엄경영 시대정신연구원장)임이 분명하다. 광장의 ‘이대남’만 보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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