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영국 총선
보이기
1959년 영국 총선 | |||||||||||||||||||||||||||||||||||||||||||||||||||||||||||||||
| |||||||||||||||||||||||||||||||||||||||||||||||||||||||||||||||
| |||||||||||||||||||||||||||||||||||||||||||||||||||||||||||||||
선거구별 1위 정당 지도 | |||||||||||||||||||||||||||||||||||||||||||||||||||||||||||||||
|
1959년 영국 총선
%
50
40
30
20
10
0
49.4%
43.8%
5.9%
0.3%
0.2%
0.11%
0.08%
득실표율
1959년 영국 총선은 1959년 10월 8일 영국에서 치러진 총선으로, 여당인 보수당이 과반을 차지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였다.
배경
[편집]1956년 수에즈 위기로 이듬해 앤서니 이든 수상이 사퇴한다. 당시 야당인 노동당은 새 당수인 휴 게이츠켈을 맞아 상승세를 겪고 있었고, 여당인 보수당의 지지율을 앞서게 된다. 하지만 이후 해럴드 맥밀런 내각 하에 경제는 살아났고, 1958년 9월부터 보수당의 지지율은 다시 노동당을 앞서기 시작한다.
선거 과정
[편집]보수당은 호황과 맥밀런 수상의 인기에 힘입어 "보수당과 함께라면 나아집니다. 노동당이 망치게 두지 마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한편 노동당은 보수당 정부 하에서의 양극화를 공격하며, "영국은 여러분의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또 게이츠켈 총재는 증세는 없을 거라고 공언했는데, 이는 오히려 노동당의 연금공약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 일으켜 선거 패배의 요인이 되었다.
선거 결과
[편집]- 정당별 의석수
정당 | 의석수 |
---|---|
보수당 | 365 |
노동당 | 258 |
자유당 | 6 |
무소속 | 1 |
합계 | 630 |
- 정당 득표율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보수당 | 13,750,875 | 49.4% |
노동당 | 12,216,172 | 43.8% |
자유당 | 1,640,760 | 5.9% |
웨일스당 | 77,571 | 0.3% |
신페인 | 63,415 | 0.2% |
공산당 | 30,896 | 0.11% |
스코틀랜드 국민당 | 21,738 | 0.08% |
파이프사회주의연대 | 4,886 | 0.02% |
운동연맹 | 2,821 | 0.01% |
랭커셔당 | 1,889 | 0.007% |
국민노동당 | 1,685 | 0.006% |
동료당 | 1,189 | 0.004% |
독립노동당 | 923 | 0.003% |
훗날 수상이 되는 마가렛 대처도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