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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반 베흐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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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반 베흐텐
Carl Van Vechten
1934년 4월 3일, 칼 반 베흐텐의 자화상
작가 정보
출생1880년 6월 17일
미국 아이오와주 시더래피즈
사망1964년 9월 21일 (84세)
미국 뉴욕
성별남성
직업작가, 사진 작가
학력워싱턴 고등학교 (아이오와주)
시카고 대학교
부모아버지: 찰스 듀안 반 베흐텐(Charles Duane Van Vechten)
어머니: 에이다 아만다 반 베흐텐(Ada Amanda Van Vechten)
배우자에나 스네이더(Anna Snyder): 1907 ~ 1912; 이혼
파니아 마리노프(Fania Marinoff): 1914 ~ 1964
주요 작품
흑인 천국(Nigger Heaven)
영향
영향 받은 인물메이블 닷지 루한

칼 반 베흐텐(Carl Van Vechten, 1880년 6월 17일~1964년 9월 21일)은 미국작가이자 예술사진 작가이다. 그는 할렘 르네상스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유저(遺著) 관리자이기도 했다. 1926년에 쓴 소설 《흑인 천국》(Nigger Heaven)으로 유명하다. 또한 말년에, 유명인들의 초상 사진을 많이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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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미국 시더래피즈의 부유한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찰스 듀안 반 베흐텐(Charles Duane Van Vechten)은 저명한 은행가였다. 그의 어머니 에이다 아만다 반 베흐텐(Ada Amanda Van Vechten)은 시더래피즈 공공도서관을 설립했으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반 베흐텐은 그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과 연극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1898년, 워싱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반 베흐텐은 인생의 다음 단계를 밟고 싶었지만 아이오와주에선 자신의 열정을 뽑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사랑 받지 못하는 마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899년엔 시카고 대학교로 진학을 하고 음악, 미술, 오페라 등 다양한 전공을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그는 글쓰기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학 신문인 University of Chicago Weekly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903년, 대학을 졸업한 후 반 베흐텐은 시카고의 신문사인 《시카고 아메��칸》에 칼럼니스트로 취직했다. 그는 칼럼니스트로 일 하는 동안 칼럼에 사진들을 직접 실으면서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복잡한 그의 글쓰기 스타일로 인해 결국 《시카고 아메리칸》에서 해고 당했다. 1906년, 뉴욕으로 이사한 반 베흐텐은 《뉴욕 타임스》의 보조 음악 평론가로 고용되었다. 그러다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자 그는 1907년에 《뉴욕 타임스》를 그만두고 오페라에 좀 더 몰두하기 위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1907년, 영국에 있는 동안 반 베흐텐은 어릴 적 고향 친구였던 에나 스네이더(Anna Snyder)와 결혼했다. 그 후 1909년 다시 뉴욕 타임스로 돌아와 미국 최초의 현대 무용 평론가가 되었다. 그의 멘토 메이블 닷지 루한(Mabel Dodge Luhan)의 영향으로 그는 아방가르드에 심취하게 되었다. 반 바흐텐은 이사도라 덩컨, 안나 파블로바, 로이 풀러가 뉴욕에서 공연할 당시 뮤지컬 초연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다. 1913년엔 파리의 초연에 참석하여 미국의 작가이자 시인인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을 만나 그녀의 친구이자 가장 열성적인 팬 중 한 명이 되었다. 반 베흐텐과 스타인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으며 반 베흐텐은 스타인이 사망한 후 스타인의 유저(遺著) 관리자가 되었다. 그는 그녀의 미출판 저작물을 인쇄하는 데 기여했으며 예술 잡지 The Trend에 "거트루드 스타인을 읽는 방법"이라는 글을 기재하기도 했다.

1912년, 에나 스네이더와 이혼 후 1914년에 러시아계 미국인 배우 파니아 마리노프(Fania Marinoff)와 결혼했다. 반 베흐텐과 마리노프는 당시 흑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종 차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 모임을 위해 흑인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으며 흑인들을 위한 공개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반 베흐텐은 미국의 재즈 시대 화가인 플로린 스테트하이머(Florine Stettheimer)가 1920년도에 그린 Asbury Park South 그림에도 나온다. 왼쪽 구조물 위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인물이 반 베흐텐이다. 그림의 중앙, 분홍색 정장을 입고 있는 마르셀 뒤샹은 반 베흐텐의 아내 파니아 마리노프와 걷고 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5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지만 반 베흐텐은 동성애양성애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특히 1931년 뉴욕에서 만난 마크 러츠(Mark Lutz)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러츠는 반 베흐텐이 막 사진 촬영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연습 촬영 모델을 하기도 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반 베흐텐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러츠는 반 베흐텐의 사진 12,000여 점의 컬렉션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러츠가 사망한 후엔 그의 희망에 따라 반 베흐텐과의 10,000통에 달하는 편지는 파기되었다.

1915년에서 1920년 사이, 음악과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반 베흐텐의 에세이가 출판되었으며 반 베흐텐은 당시 새로 설립된 출판사인 Alfred A. Knopf에서 비공식 스카우터를 맡기도 했다.

반 베흐텐은 예술을 감상하는 한 명의 감상자로서 할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의성의 폭발에 매우 흥미를 느꼈으며 할렘에서 게이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반 베흐텐은 폴 로브슨, 랭스턴 휴스, 에설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조라 닐 허스턴월리스 서먼할렘 르네상스의 많은 주요 인물들을 홍보하고 지지하기도 했다. 1926년엔 미국의 잡지사인 배너티 페어에서 반 베흐텐의 논란의 소설 《흑인 천국》(Nigger Heaven)이 출판되었다.

반 베흐텐은 할렘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러나 그의 초기 산문에서 흑인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어야 하고 가수는 재즈, 흑인영가, 블루스 등 흑인의 타고난 재능을 따라야 한다는 등 흑인에 대한 편견이 담긴 표현을 하여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반 베흐텐은 할렘에서 열린 오페라와 카바레에 자주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할렘의 유흥과 문화에 대한 백인들의 관심을 높이는데 일조하기도 했으며 랭스턴 휴스와 넬라 라르센과 같은 저명한 작가들이 초기 작품의 출판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1927년 6월 28일, 그의 형 랄프 반 베흐텐(Ralph Van Vechten)이 사망하고 뒤이어 1928년, 형수인 패니(Fannie)가 사망하자 반 베흐텐은 신탁 기금에 투자한 100만 달러를 상속받았다.

웨스트 55번가 150번지에 위치한 반 베흐텐의 아파트 스튜디오

1930년대 초, 50세에 이른 반 베흐텐은 글 쓰는 것을 멈추고 사진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웨스트 55번가 150번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스튜디오로 활용하여 많은 유명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34년 5월 8일, 칼 반 베흐텐의 자화상

반 베흐텐은 1964년 9월 21일, 뉴욕에서 8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그의 유골은 센트럴 파크 내 셰익스피어 가든에 안장되었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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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베흐텐은 40세에 《피터 위플》(Peter Whiffle)이라는 책을 집필하여 저명한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소설은 할렘 르네상스의 역사적 자료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24년, 《문신을 한 백작 부인》 책 표지

또한 그는 자전적인 성질을 허구적인 형태로 묘사하여 소설을 쓰기도 하는데, 1924년에 쓴 소설 《문신을 한 백작 부인》(The Tattooed Countess)은 그의 고향 시더래피즈에서 겪었던 기억을 조작하여 쓴 책이다. 또한 1920년에 쓴 《집 안의 호랑이》(The Tiger in the House)는 반 베흐텐이 가장 애정하는 동물인 고양이의 특징과 특성을 탐구한 책이다.

논란이 많은 그의 소설 중 하나인 《흑인 천국》(Nigger Heaven)은 논란과 찬사를 모두 받았다. 반 베흐텐은 이 책을 "나의 흑인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남부 흑인들의 인종차별과 형벌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할렘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책 제목에 인종차별적인 성격이 강한 니거(Nigger)라는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반 베흐텐에게 제목을 수정할 것을 권하였음에도 그는 책 제목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러한 선동적인 책 제목으로 인해 책의 내용이 빛을 발하지 못 할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다. 반 베흐텐의 아버지는 "책에서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이러한 제목은 이해가 되지 않고 제목을 바꾸는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반 베흐텐에게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어떻게 묘사했는지에 대해 흑인 독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했다. 마치 흑인을 외계인 같이 이상하게 표현한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전형적인 백인처럼 표현한 점에서 소설을 높이 평가한 의견도 있었다. 넬라 라르센, 랭스턴 휴스 그리고 거트루드 스타인 등 많은 인사들은 할렘 사회와 인종 문제를 미국의 최전선으로 끌어온 이 소설을 지지하기도 했다.

작품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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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베흐텐의 개인 논문 대부분은 예일 대학교 바이네케 고문서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바이네케 도서관은 1,884개의 컬러 코다크롬 슬라이드 컬렉션인 "살아있는 초상화: 칼 반 베흐텐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컬러 사진, 1939~1964"라는 제목의 컬렉션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1966년 Saul Mauriber(1915년 5월 21일 ~ 2003년 2월 12일)로부터 획득한 약 1,400장의 사진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미스소니언 미술관피스크 대학교에도 반 베흐텐의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뉴욕 박물관에는 반 베흐텐의 사진 2,174점이 소장되어 있으며 브랜다이스 대학교의 기록 보관소 및 특별 컬렉션 부서에는 1,689점의 칼 반 베흐텐 초상화를 소장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에서 가장 큰 반 베흐텐의 작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1949년 반 베흐텐은 자신의 사진 60점을 미술관에 선물했으며 반 베흐텐이 사망한 이후 1965년, 베흐텐의 연인이었던 마크 러츠는 자신의 개인 소장품 중 반 베흐텐의 사진 12,000여 점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도 반 베흐텐의 초상화 작품 17점이 소장되어 있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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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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