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농총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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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1])은 1924년 4월 16일에 결성된 노동자·농민 조직이다.
결성
[편집]전국의 노동단체와 농민단체 167개가 모여 결성되었다. 강령으로 ‘노농계급 해방’, ‘완전한 신사회 실현’,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 ‘노농계급의 복리증진 및 경제적 향상 도모’를 내세웠다.[2] 50명의 중앙집행위원을 두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서울청년회 · 화요회 출신의 사회주의자였다.[3]
활동
[편집]한때 가입 단체 260여 개, 회원수 5만 3천여 명에 달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노동쟁의·소작쟁의 지원 활동을 주로 했으며, 이외에도 기관지 발행, 형평 운동 지원, 청년운동과의 제휴, 민족개량주의로 지목된 「동아일보」에 대한 규탄 등의 활동을 했다.[3] 1926년 6·10 만세운동 때 조선공산당과 연대하여 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4]
해체
[편집]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고, 서울청년회파(派)와 화요회파 사이에 주도권 쟁탈전이 일어나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위기를 맞았다.[3] 결국 1927년 9월 6일 조선노동총동맹과 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3]
각주
[편집]- ↑ “조선노농총동맹(朝鮮勞農總同盟)”.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2년 1월 2일에 확인함.
- ↑ 조선노농총동맹 《한국근현대사사전》. 한국사사전편찬회
- ↑ 가 나 다 라 박철하, 조선 노농 총동맹[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한국사콘텐츠
- ↑ 박찬승, 6 · 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다 《한국독립운동사》.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