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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아 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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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incia Achaia
Ἐπαρχία Ἀχαΐας
로마 제국속주
기원전 27년–7세기

서기 125년경 로마 제국 내 아카이아 속주
주도코린토스
역사적 시대고대사
•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 이후 설치
기원전 27년
• 슬라브족의 발칸반도 침입
헬라스 테마 설치
7세기
Preceded by
Succeeded by
아카이아 동맹
아이톨리아 동맹
고대 아테네
헬라스 테마
오늘날그리스의 기 그리스
원로원 속주 아카이아 (그리스 남부)를 나타내는, 하드리아누스 시기 (재위 117-138년)의 로마 제국
아카이아 속주를 기념하는, 하드리아누스세스테르티우스.

아카이아 속주(그리스어: Ἀχαΐα, Akhaia 라틴어: Achaia)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아티카, 보이오티아, 에우보이아, 키클라데스 제도프티오티스, 에톨로아카르나니아, 포키스 등의 일부 지역들로 구성된, 로마 제국속주이다. 북쪽으로는, 에피루스 베투스, 마케도니아 속주들과 접한다. 아카이아 지역은 "아카이쿠스" (Achaicus, "아카이아의 정복자")라는 코그노멘을 수여받은, 로마의 장군 루키우스 뭄미우스코린토스 약탈을 한 것에 뒤이어, 기원전 146년에 로마 공화정에 합병되었고, 그리스 본토 지역 전체를 아울렀던 마케도니아 속주의 일부가 되었다.

아카이아는 원로원 속주였고, 따라서 군인과 군단들이 없었고, 원로원 의원들이 다스리기에 가장 명망있고 인기있는 지역들 중 하나였다.[1] 아테네는 알렉산드리아만이 견줄 수 있는, 제국의 엘리트들에게 주요한 교육의 중심지였고, 제국의 가장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였다.[1] 아카이아는 야만인의 침입을 처음 겪은 고대 후기까지 로마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고 평화로운 지역들이었다. 6세기의시네크데모스에서 확인되었듯이, 이 지역은 번영하고 고도의 도시화가 이뤄진 곳이었다.

7세기의 슬라브족의 침입은 광범위한 파괴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요새화된 도시들 및, 에게해의 섬들, 이탈리아 등으로 도망쳤으며, 반면 몇몇 슬라브 부족들은 내륙 지역에 정착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에 남아있던 아카이아 지역들은 헬라스라는 테마 제도로 재조직되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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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0-148년에, 로마인들은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벌여, 전쟁 후에, 과거 그리스 본토에서 가장 크고 강력했던 국가인 마케도니아를 합병했다. 기원전 146년에 아카이아 동맹은 로마인들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로마가 훨씬 군사력이 강했기에 희망없는 전쟁이었다. 고대 그리스 학자 폴리비오스는 아카이아 동맹이 로마의 힘에 맞설 수 있다는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무모한 결정을 하게하고, 자멸적인 전쟁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서 아카이아 동맹의 도시들의 민중 지도자들을 비난하였다. 아카이아 동맹은 순식간에 패배했고 이들의 중심 도시 코린토스는 파괴되었다. 로마는 그리스 본토 전역을 합병하기로 결정했고 아카이아는 마케도니아 속주의 일부가 되었다. 아테네스파르타 같은 일부 도시들은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자치권을 유지했다.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기원전 89-85년)이 아카이아 속주의 일부가 된, 보이오티아와 아티카에서 치러졌다. 기원전 89년에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의 아시아 속주 (아나톨리아 서부)를 점령했다. 미트리다테스는 아르켈라오스 (핵심 군 지휘관)을 그리스로 파견했고, 그곳에서 아리스티온을 그리스의 참주로 옹립했다. 로마 집정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피루스 (그리스 서부)에 상륙하여 아테네로 진격했다. 그는 아티카로 향하면서 보이오티아를 걸쳐갔다. 술라는 기원전 87-86년 동안 아테네와 피레아스를 포위했으며 그 후 아테네를 약탈하고 피레아스를 파괴했다. 그 뒤 그는 기원전 86년에 보이오티아에서 일어난 카이로네아 전투오르코메노스 전투에서 아르켈라오스를 패배시켰다. 따라서 로마의 그리스 지배가 유지되었다.

아카이아의 상업은 더 이상 로마의 상업에 대한 경쟁자가 되지 못하였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패한 후, 대략 기원전 31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마케도니아를 아카이아에서 분리시켰지만, 그럼에도 공화정 시기에는 원로원 속주 지위를 유지했다. 서기 15년, 티베리우스 황제는, 원로원 속주의 프로콘술들의 잘못된 관리에 대한 불행에 반응하며, 아카이이와 마케도니아를 황제 속주로 만들었다.[2] 이 속주들은 서기 44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개혁 때 원로원 속주로 복원되었다.[3]

시간이 흘러, 그리스는 서서히 재건되어, 헬레노필레 하드리아누스 (117-138) 황제 재위 기간에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스 학자 헤로데스 아티쿠스와 같이, 하드리아누스는 거대한 재건 계획에 착수했다. 그는 아테네와 그리스의 많은 도시들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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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 납, 은 광산들이 아카이아에서 개발되었지만, 그럼에도 생산량은 노리쿰,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의 속주들 같은 다른 로마의 지배권에 있던 지역들의 광산들만큼은 많지 않았다. 그리스 채석장의 대리석은 상품적 가치가 있었다.

교육을 받은 그리스 노예들은 의사 및 교사 역할로 로마에서 많은 수요가 있었고, 지식인들은 중대한 수출품이었다. 또한 아카이아는 가구, 도기, 화장품, 리넨 같은 가정용 사치품들을 생산했다. 그리스제 올리브와 올리브유는 제국의 나머지 지역으로 수출되었다.

로마 총독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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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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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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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man provincial coinage: Τόμος 1, Andrew Burnett, Michel Amandry, Pere Pau Ripollés Alegre - 2003
  2. 타키투스, Annals.1.76
  3. 수에토니우스, Life of Claudius, 25.3
  4. J. Bingen, Inscriptions d’Achaïe, Bulletin de Correspondance Hellénique, 78 (1954), pp. 82—85
  5. AE 1954, 31, 《CILI, 2955;
  6. R. Sherk, Rome and the Greek East to the Death of August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vol. IV pp. 50—51;
  7. Jeanne Robert & Louis Robert, "Bulletin épigraphique", Revue des Études Grecques, 92 (1979), pp. 413—541, p. 444 n. 205
  8. T. Corey Brennan, The Praetorship in The Roman Republic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Vol. II p. 894 n. 100
  9. 달리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91/92년부터 136/137년까지 총독 목록은 Werner Eck의 "Jahres- und Provinzialfasten der senatorischen Statthalter von 69/70 bis 138/139", Chiron, 12 (1982), pp. 281-362; 13 (1983), pp. 147-237.에서 가져온 것이다
  10. Werner Eck, "L. Marcius Celer M. Calpurnius Longus Prokonsul von Achaia und Suffektkonsul unter Hadrian", in Zeitschrift für Papyrologie und Epigraphik, 86 (1991), pp. 97–106.
  11. Giuseppe Camodeca, "Una nuova coppia di consoli del 148 e il proconsul Achaiae M. Calpurnius Longus", in Zeitschrift für Papyrologie und Epigraphik, 112 (1996), pp. 235–240.
  12. 달리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144년부터 182년까지 총독 목록은 Géza Alföldy의 Konsulat und Senatorenstand unter der Antoninen (Bonn: Rudolf Habelt Verlag, 1977), pp. 260-262에서 가져온 것이다
  13. 달리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184년부터 대략 235년까지 총독들은 Paul M. M. Leunissen의 Konsuln und Konsulare in der Zeit von Commodus bis Severus Alexander에서 가져온 것이다 (Amsterdam: J.C. Gieben, 1989), pp. 293-296
  14. CILX, 3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