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우복 종택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 |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구)제296호 (2018년 11월 1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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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2필지, 19,048m2 |
수량 | 8동, 631.7m2 |
시대 | 조선시대 |
관리 | 진주정씨종중 |
위치 |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외(우산리 193-1외) |
좌표 | 북위 36° 28′ 31″ 동경 128° 03′ 42″ / 북위 36.47528° 동경 128.06167°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해지) | |
종목 | 민속문화재 (구)제31호 (1982년 2월 24일 지정) (2018년 11월 1일 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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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은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7월 13일 지정 예고[1]를 거쳐, 2018년 11월 1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로 지정되었다.[2]
개요
[편집]진주 정씨 우복 정경세(1563∼1633) 선생이 38세 때 이 고장에 들어와 남은 여생을 지낸 곳으로, 우복동천이라고도 한다. 선생이 선조와 인조 때 성실하게 활동한 것을 치하하여 영조가 남북 10리와 동서 5리의 우복동천 구역을 하사함으로서 5대손인 정주원 때부터 대대로 살게 되었다.
튼 ㅁ자로 배치된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가묘가 남아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부엌·안방·윗방·대청·상방으로 구성되었고, 사랑채는 一자형 구조로 사랑방·대청·건넌방이 배열되어 있다. 집 몸채의 바닥이 마당보다 상당히 높게 자리잡고 있어 특이하다.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사유
[편집]우복(禹伏) 정경세(1563~1633) 선생은 1602년 대산루를 짓고 1603년 별서 기능을 가진 계정을 지었으며 그의 고손자인 주원(1563~1633)은 영조가 하사한 사패지에 종택을 지었다.[2]
이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전형적인 배산임수에 자리하고 있으며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이 튼 口자형으로 배치된, 종택으로써 갖추어야 할 건축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영남 지방의 반가이다.[2]
종택보다 이전에 건립된 계정과 대산루는 별서 기능에서 종택의 별당과 또는 접빈공간으로 기능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대산루 T자형 평면구성은 영남지방 반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2]
정조가 하사한 시문판을 소장하고 있고 기제사와 묘제 등 조선시대 제례문화가 현재까지 전승되는 등 역사적·학술적·민속적·건축적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보존할 가치가 있다.[2]
지정 내역
[편집]명칭 | 시대 | 구조/형식/형태 | 크기/수량 | 소유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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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우복 종택 | 안채 | 조선시대 | 목조, 5량(몸채), 3량(익사), 팔작지붕 | 141.7㎡ | 진주정씨종중 |
사랑채 | 조선시대 | 목조, 5량, 팔작지붕 | 81.4㎡ | ||
아래채 | 조선시대 | 목조, 3량, 맞배지붕 | 83.2㎡ | ||
대문채 | 1991년 | 목조, 3량, 맞배지붕 | 81.3㎡ | ||
사당 | 조선시대 | 목조, 5량, 맞배지붕 | 72.2㎡ | ||
별묘 | 조선시대 | 목조, 3량, 맞배지붕 | 46.4㎡ | ||
계정 | 조선시대 | 목조, 3량가, 초가지붕 | 13.9㎡ | ||
대산루 | 조선시대 | 목조, 5량가, 팔작지붕 | 111.6㎡ | ||
631.7㎡ |
각주
[편집]- ↑ 문화재청공고제2018-239호(국가지정문화재〈국가민속문화재〉 지정예고), 제19296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8. 7. 13. / 95 페이지 / 867.5KB
- ↑ 가 나 다 라 마 문화재청고시제2018-149호(국가지정문화재 지정〈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 상주 우복 종택〉), 제19369호 / 관보(정호) / 발행일 : 2018. 11. 1. / 30 페이지 / 1MB
참고 문헌
[편집]- 상주 우복 종택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