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선화당 측우대
대한민국의 보물 | |
종목 | 보물 (구)제842호 (1985년8월 9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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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기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국유 |
관리 | 기상청 |
주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16길 61 (신대방동, 기상청)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대구 선화당 측우대(大邱 宣化堂 測雨臺)는 대구 감영의 선화당에 있던 측우대[A]를 말한다. 1985년 8월 9일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되었다.[2] 공식 명칭은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이다.
개요
[편집]《세종실록》에 따르면, 땅 속에 스며들거나 웅덩이에 고인 물을 통해 강우량을 재던 그 때까지의 부정확한 측정방법을 대신하여, 측우기를 만들어 측우대에 설치하고 강우량을 전국적으로 측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영조 46년에 세종조의 옛 제도에 따라 측우기를 만들어 창덕궁과 경희궁의 양궐과 8도 양도에 설치하여 우량의 다소를 측정하게 하였다. 양운관에 높이 포백 1척, 길이 8촌의 석대를 만들고 대 위에 길이 1촌의 원형 구멍을 파서 측우기를 올려놓았다. 이 때에 만들어진 측우기는 1917년에 모두 7기가 남아 있었으며, 그 대석은 4개 있었다고 조선고대관측기록보고에 보고되어 있다. 현재 측우기는 모두 멸실되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고, 대석도 본 유물만 남아 있다.
이 측우대는 화강암 기둥으로 가운데 직경 16cm, 길이 4.3cm의 구멍이 있고, 앞면 한 가운데에는 측우대, 뒷면에는 '건륭경인오월조'라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하여 조선 영조 46년에 제작된 측우대임을 알 수 있다. 1917년 조사 때 대구 감영 선화당 뜰에 측우기와 함께 있었던 것을 인천 관측소로 옮겼다. 이후 측우기는 없어지고 대석만 남아 있다가 1950년 국립기상대[3]로 옮겼다.
이 유물은 한국전쟁 때 총격으로 몇 군데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지만 제작연대가 확실한 측우대로는 유일하다. 특히 《영조실록》의 기록과 부합되는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내용
- 출처
- ↑ 대구 선화당 측우대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 관보 제10111호 1985년 8월 9일. 5-6쪽. 5쪽. 문화공보부고시제645호. 국보및보물지정. 문화공보부장관. 2016년 5월 20일 확인함.
- ↑ 현재의 기상청.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 소재
참고 자료
[편집]- 본 문서에는 서울특별시에서 지식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한 저작물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대구 선화당 측우대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