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대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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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Großherzogtum Sachsen-Weimar-Eisenach)은 1815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중부 튀링겐 지방에 있던 대공국으로, 작센 공작령의 필두였다. 1903년 이후의 공문서에서는 작센 대공국(Großherzogtum Sachsen)으로 표기되었다.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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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ßherzogtum Sachsen-Weimar-Eisenac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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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바이마르인의 노래 (Weimars Volkslied) | |||
수도 | 바이마르 | |||
정치 | ||||
정치체제 | 군주제 | |||
대공 | 카를 아우구스트(de) 대공(초대) 빌헬름 에른스트(de) 대공(마지막) | |||
역사 | ||||
• 대공국 승격 | 1815년 | |||
• 군주제 폐지 | 1918년 | |||
지리 | ||||
면적 | 3,617 km2 | |||
인문 | ||||
공용어 | 독일어 | |||
인구 | ||||
1910년 어림 | 417,000명 | |||
인구 밀도 | 116명/km2 | |||
경제 | ||||
통화 | 파피어마르크 (1914년부터) |
역사
편집1741년 이래 작센바이마르 공국과 작센아이제나흐 공국은 동군연합 상태였다. 1809년에 두 공국을 합병하여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국이 되었고, 1815년에는 동쪽의 노이슈타트 안 데어 오를라(Neustadt an der Orla) 지역을 흡수하면서 대공국으로 승격하였다.
1871년 독일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918년 군주제 폐지 후 2년간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자유주(Freistaat Sachsen-Weimar-Eisenach)로 불리다가 1920년 튀링겐주에 합병되었다. 수도는 바이마르였으며 면적은 3,617 km2, 인구는 1910년 당시 417 천명이었다. 주민의 대부분은 국교인 루터파 개신교도였다.
국기는 1897년 이전에는 위에서부터 흑-녹-황색을 사용하다가, 그 이후는 위에서부터 흑-황-녹색을 사용하였다.
역대 군주
편집- 1816년 -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1757-1828)
- 1828년 - 1853년 카를 프리드리히 (1783-1853)
- 1853년 - 1901년 카를 알렉산더(de) (1818-1901)
- 1901년 - 1918년 빌헬름 에른스트(de) (1876-1923)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 수장
편집영토, 인구
편집이 대공국은 1910년 현재로 3개 군(郡)의 5개 행정구가 관할하는 35개 시(市)로 이뤄졌는데, 이 3개 군은 튀링겐의 다른 공국들에서처럼 또한 13개의 외비지(de)(外飛地)를 관할했다.
- 바이마르 군: 2 행정구가 관할하는 19 시, 6 외비지로 구성. 지도 가운데에 위치하는 바이마르 행정구(de) 중에서 붉은 점이 찍힌 바이마르 가 이 대공국의 수도였다. 또, 아폴다 행정구(de)에는 교육의 중심지인 예나(de) 시가 있었다. 1910년 당시 면적 1,752.59 km2, 인구 236,800명.
- 아이제나흐 군: 지도 왼쪽에 있으며, 2 행정구, 9 시, 3 외비지로 구성. 아이제나흐 행정구(de)가 중심지였다. 1910년 면적 1,214.03 km2, 인구 119,600명.
- 노이슈타트 군(de): 지도의 오른쪽인 노이슈타트 행정구(de)가 관할하는 7 시, 4 외비지로 구성. 1910년 면적 628.71 km2, 인구 60,700명.
같이 보기
편집- 아우구스타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녀, 독일국의 빌헬름 1세의 황후 (1811-1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