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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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三淸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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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Samcheong-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
행정 구역 | 10통, 50반 |
법정동 | 팔판동, 삼청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07 |
지리 | |
면적 | 1.49 km2 |
인문 | |
인구 | 2,384명(2022년 8월) |
세대 | 1,232세대 |
인구 밀도 | 1,60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종로구 삼청동 |
삼청동(三淸洞)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1][2]
역사
[편집]지명 유래
[편집]도교의 주신인 삼청(옥청, 상청, 태청)을 모시는 신전인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3] 삼청전의 제사는 소격서에서 주관하였다. 한편, 《한경지략》에는 ‘산이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는 뜻에서 삼청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었다.[4]
연혁
[편집]-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을 아래와 같이 개편함[5]
- 팔판동(八判洞) ← 팔판동일부(八判洞一部)
- 삼청동(三淸洞) ← 삼청동(三淸洞) · 팔판동일부(八判洞一部)
- 안국동(安國洞) ← 소안동일부(小安洞一部) · 홍현일부(紅峴一部) · 안현(安峴) · 재동일부(齋洞一部)
- 소격동(昭格洞) ← 소격동(昭格洞) · 화개동일부(花開洞一部) · 대안동일부(大安洞一部)
- 화동(花洞) ← 화개동일부(花開洞一部) · 동곡일부(東谷一部) · 홍현일부(紅峴一部) · 소안동일부(小安洞一部)
- 간동(諫洞) ← 간동(諫洞) · 벽동일부(碧洞一部)
- 송현동(松峴洞) ← 대안동일부(大安洞一部) · 벽동일부(碧洞一部) · 송현일부(松峴一部) · 고리정동(古里井洞)
- 1914년 9월 27일: 경기도 경성부 북부출장소에 배속[6]
- 1915년 6월 1일: 북부출장소 폐지, 경기도 경성부에 배속
- 1936년 4월 1일: 동(洞)을 정(町)으로 변경[7]
- 1943년 6월 10일: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에 배속[8]
- 1946년 10월 1일: 정(町)을 동(洞)으로 변경, 간정(諫町)은 사간동(司諫洞)으로 개칭[9]
- 1955년 4월 18일: 아래와 같이 행정동 설치[10]
- 태화동(太和洞): 삼청동(35번지 제외) · 팔판동
- 백록동(白鹿洞): 삼청동 35번지 · 가회동 · 재동
- 수진동(壽進洞): 사간동 · 송현동 · 중학동 · 수송동
- 별궁동(別宮洞): 안국동 · 소격동 · 화동
- 광교동(廣橋洞): 종로1가 · 서린동 · 청진동
- 1970년 5월 18일: 행정동 태화동을 삼청동으로, 백록동을 가회동으로 개칭하고, 행정동 수진동·별궁동·광교동을 안국동(사간동+송현동+안국동+소격동+화동)과 청진동(중학동+수송동+청진동+서린동+종로1가)으로 개편[11]
- 1975년 10월 1일: 행정동 안국동을 삼청동에 합동하고, 삼청동 35번지도 삼청동에 편입[12]
법정동
[편집]- 팔판동
- 삼청동
- 안국동
- 소격동
- 화동
- 사간동
- 송현동
유적
[편집]-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 삼청동문(三淸洞門) 각자: 인조 때 김경문이 새긴 글씨로, 총리 공관 인근에 위치한다. 보물 제1560호 도성도에도 기록되어 있다.[13]
- 운룡천(雲龍泉) 각자: 정조의 수라상에 진상하던 우물로, 그 각자가 남아 있다.[14]
주요 기관
[편집]- 총리관저
- 감사원
- 한국금융연수원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삼청동우체국
- 안국우체국
- 삼청파출소
- 국군서울지구병원
- 주한 폴란드 대사관
교통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유지상 (2008년 3월 28일). “[커버스토리] 삼청동 은근히 폼나는 동네”. 중앙일보. 2020년 7월 26일에 확인함.
- ↑ 손관승 (2020년 5월 7일). “삼청동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다시 자유를 느낀다”. 한겨레. 2020년 7월 26일에 확인함.
- ↑ 진혜선 (2014년 3월 20일). “너무나 익숙해서 인식 못했던…길 위에서 만난 ‘도교’”. 정책브리핑. 2020�� 5월 4일에 확인함.
- ↑ 이정훈 (2017년 8월 18일). “주말 삼청동서 정갈하게 먹는 고기와 식사”. 조선일보. 2022년 11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0년 5월 4일에 확인함.
- ↑ 경기도고시 제7호
- ↑ 경성부조례 제8호
- ↑ 경기도고시 제32호
- ↑ 조선총독부령 제163호 (1943년 6월 9일)
- ↑ 서울시헌장 제1조
- ↑ 서울특별시조례 제66호
- ↑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
- ↑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
- ↑ 서울 ‘三淸洞門’ 표지석 아시나요, 《국민일보》, 2009.05.15.
- ↑ 고사리손으로 살려냈죠, 희미한 옛 서울의 흔적, 《중앙일보》, 2009.05.29.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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