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프랑수아 푸르크루아
앙투안 프랑수아 푸르크루아(프랑스어: Antoine François Fourcroy, 1755년 6월 15일 ~ 1809년 12월 16일)는 프랑스의 화학자이다.
생애
[편집]1755년 파리에서 오를레앙 공 집안의 자손이자,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 그는 의학을 공부하였으나,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어 뜻을 잃게 되었고 결국 화학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1784년 그는 왕의 정원(프랑스어: Jardin du Roi, 지금의 Jardin des Plantes)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견해를 따른 최초의 화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라부아지에의 저술 작업을 돕기도 하였다. 그는 화학 논문도 많이 썼지만 생리학, 병리학 관련 논문도 많이 제출하였고, 이러한 논문에 있어서 푸르크로아는 독창적인 발명가이기보다는 지도자나 편집자로 많은 기여를 하였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공공교육 및 공공안전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하였고, 나폴레옹 집권 이후 교육부장관이 되었다. 그는 학교 설립에 있어 많은 역할을 하였고 과학 교육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프랑스 제국으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수여받은 1809년 12월 16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비난
[편집]푸르크로아는 앙투안 라부아지에의 처형을 방조하였다는 것으로 인하여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박물학자 조르주 퀴비에 등은 이러한 비난에 대해서 푸르크로아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본 문서에는 현재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1판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은 화학자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으로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