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계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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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계(遍計)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두루 ~라고 헤아린다', '널리 ~라고 헤아린다', '일반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 ~라고 헤아린다'이다.[1] '헤아린다'라는 뜻의 한자어 계(計)는 전통적인 용어인 계탁(計度) 또는 계탁분별(計度分別)의 줄임말이다. 계탁분별을 줄여서 그냥 분별(分別)이라고도 한다. 계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을 순한글로는 일반적으로 헤아림이라고 한다.
계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 · 헤아림은 특히 제6의식의 작용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에 대해 생각[量]하고 사유(思惟: 특히 심사숙고)하고 구별[分別]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2][3][4] (이하 '계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 · 헤아림'을 가리키는 낱말로서 '계탁분별'을 사용한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권에 따르면 계탁분별의 본질적 성질 즉 본질은 제6의식과 상응하는 산혜(散慧) 즉 산란된 지혜이다. 그리고 산란된 지혜[慧]는 선정[定]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지혜' 또는 선정에 든 상태일 때 나타나는 '바른 지혜'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지혜를 말한다.[5][6] 즉 무루혜가 아닌 유루의 지혜인 문혜 · 사혜 · 수혜의 3혜 또는 여기에 생득혜를 더한 4혜를 말한다.
계탁분별의 정의인 '생각하고 사유하고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 그 자체에는 본래 부정적인 의미가 없지만, 선정[定]에 의해 나타나는 바른 지혜, 즉 무루혜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 일반에서는 계탁분별이라는 용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변계(遍計)라는 낱말의 문맥에서의 계탁분별, 즉 계(計) · 계탁 · 분별 · 헤아림은 항상 부정적인 의미인 그릇된 헤아림의 뜻으로 사용된다.
즉, 변계(遍計)라는 낱말의 문맥에서의 계탁분별은 미혹한 상태의 제6의식, 즉 깨닫지 못한 상태의 제6의식, 즉 아직 전의(轉依: 識이 智로 바뀌는 질적 변형)를 획득하지 못한 제6의식을 토대로 무상한 존재인 사람[人: 즉 5온의 가화합]과 법(法)에 대해 실아(實我)가 존재하고 실법(實法)이 존재한다라고 두루[遍] 헤아리는 것, 즉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물에 대해 보편적으로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며 또한 이러한 생각과 믿음을 바탕으로 대상을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7][8] 달리 말하면, 제6의식이 자신의 인식대상인 일체만법에 대해 보편적으로 언제나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2가지 집착[二執]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9][10] 이런 뜻에서 계(計) · 계탁 · 계탁분별 · 분별 · 헤아림을 보통 불교 일반에서는 허망한 분별 또는 그릇된 분별이라고 한다.[10][11][12][13]
한편,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제7말나식도 계탁을 하지만, 두루 즉 '주위의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항상 계탁하지는 않는다.[7] 대신, 제7말나식은 '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자신의 실아라고 여기는 근본 무명을 비롯한 4번뇌를 항상 일으킨다.[14][15]
변계(遍計)라는 낱말이 사용된 불교 용어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 능변계(能遍計) · 소변계(所遍計) 등이 있다.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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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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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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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성유식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4(17-510), T.15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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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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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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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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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遍計[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2일에 확인.
"遍計:
遍 두루 편
1. 두루 2. 모든, 전면적인(全面的-) 3. 번, 횟수(回數) 4. 두루 미치다 5. 두루 퍼지다 6. 널리 퍼져 있다 7. 널리 ~하다 8. 보편적(普遍的)으로 ~하다
計 셀 계
1. 세다 2. 셈하다, 계산하다(計算--) 3. 헤아리다 4. 꾀하다 5. 수학 6. 산수 7. 셈" - ↑ 운허, "計度分別(계탁분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
"計度分別(계탁분별): 또는 추탁분별(推度分別)ㆍ분별사유(分別思惟). 3분별의 하나. 널리 과거ㆍ현재ㆍ미래의 3세에 걸쳐 현전(現前)에 보는 사실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 - ↑ 星雲, "計度分別". 2013년 3월 2일에 확인
"計度分別: 梵語 abhinirūpanā-vikalpa。意即分別計量推度。三分別之一。又作推度分別、分別思惟。謂於所緣之境計量推度,係與意識相應的散慧之分別作用。阿毘達磨俱舍論卷二(大二九‧八中):「散,謂非定。意識相應散慧,名為計度分別。」〔大毘婆沙論卷四十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三分別」531)p3954 "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8a27 - T29n1558_p0008b08. 계탁분별(計度分別)
"若五識身有尋有伺。如何得說無分別耶。頌曰。
說五無分別 由計度隨念
以意地散慧 意諸念為體
論曰。傳說。分別略有三種。一自性分別。二計度分別。三隨念分別。由五識身雖有自性而無餘二。說無分別。如一足馬名為無足。自性分別體唯是尋。後心所中自當辯釋。餘二分別如其次第。意地散慧諸念為體。散謂非定。意識相應散慧。名為計度分別。若定若散意識相應諸念。名為隨念分別。"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27 / 1397. 계탁분별(計度分別)
"만약 5식신이 유심유사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무분별(無分別)이라고 설할 수 있는 것인가?27)
게송으로 말하겠다.
다섯 가지 식을 무분별이라고 설한 것은
계탁(計度)과 수념(隨念) 때문으로,
그것은 의지(意地)의 산혜(散慧)와
의지의 온갖 염(念)을 본질로 한다.
說五無分別 由計度隨念
以意地散慧 意諸念爲體
논하여 말하겠다. 전설(傳說)에 따르면 분별에는 간략히 세 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자성분별(自性分別)이고, 둘째는 계탁분별(計度分別)이며, 셋째는 수념분별(隨念分別)이다. 즉 5식신은 비록 자성분별을 갖을지라도 나머지 두 가지를 갖지 않기 때문에 무분별이라 설한 것으로, 이를테면 다리가 한 개 밖에 없는 말[馬]을 일컬어 다리가 없는 말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28)
여기서 자성분별은 그 본질이 오로지 바로 심(尋)일 뿐으로, '심'에 대해서는 뒤(권제4와 권제12)에 심소를 설하는 도중에 응당 자연히 분별 해석하게 되리라. 그 밖의 두 가지 분별은 순서대로 의지(意地)29)의 산란된 혜[散慧]와 온갖 염(念)을 본질로 한다. 여기서 '산란'이란 말하자면 정(定)이 아닌 것으로,30) 바로 의식상응의 산란된 혜를 일컬어 계탁분별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약 정에 있든, 혹은 산란에 있든 의식과 상응하는 온갖 염을 일컬어 수념분별이라고 한다.
27) 전5식을 보통 무분별(無分別, avikalpika,)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이 유심유사로서 심·사의 심소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그것을 유분별(有分別)이라고 하지 않는가, 다시 말해 5식상응의 '심'은 바로 분별(사유작용)이기 때문에 5식을 무분별(불확정적인 사유)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하는 난문.
28) 여기서 5식은 심(尋)·사(伺)를 본질로 하는 자성분별(즉 감성적 지각)일 뿐이고, 그것은 혜(慧)를 본질로 하는 계탁분별(즉 추리 판단의 오성적 지각)과 제6식 상응의 염(念)을 본질로 하는 수념분별(즉 기억이나 재인식)에 의해 확실한 사유[有分別, savikalpa]가 된다. 그러나 논주 세친은 경량부설에 따라 심·사의 개별적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하는 설[傳說]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본론 권제4, p.185 참조.)
29) 의지(意地, mano-bh mi). 여기서 '지'는 소의(所依)의 뜻이므로 '의지'란 의(意)로서 소의가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뜻은 '제6의근을 소의로 삼아 상응하는'의 뜻.
30) 선정 중에서는 능히 대상을 재고 헤아릴[計度] 수가 없기 때문이다." - ↑ 가 나 운허, "能遍計(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
"能遍計(능변계): ↔소변계(所遍計). 모든 법에 대하여 두루 계탁(計度)한다는 뜻. 계탁이란 자기의 미정(迷情)을 토대로 생멸 변화가 무상한 사람과 법에 대하여, 실아(實我)가 있고 실법(實法)이 있다는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계탁하는 것은 마음이거니와, 마음 가운데서도 두루 계탁하는 것은 제6식이다. 제7식도 허망하게 계탁은 하지만 두루하지는 않는다." 인용 오류: 잘못된<ref>
태그; "FOOTNOTE운허"[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1 能遍計(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 ↑ 星雲, "遍計所執性". 2013년 3월 2일에 확인
"遍計所執性: 梵語 parikalpita-svabhāva。乃唯識宗所立三性之一。又稱遍計所執相、分別性、分別相、妄計自性、妄分別性。略稱遍計所執、計所執、所執性。凡夫於妄情上,遍計依他起性之法,乃產生「實有我、實有法」之妄執性。由此一妄執性所現之相,僅能存於妄情中,而不存於實理之中,故稱「情有理無」之法、「體性都無」之法。此種分別計度之妄執性乃周遍於一切境者,故以「遍計」稱之。〔解深密經卷二、瑜伽師地論卷七十四、成唯識論卷八〕(參閱「三性」563) p5617" - ↑ 星雲, "能遍計". 2013년 3월 2일에 확인
"能遍計: 「所遍計」之對稱。第六識、第七識普遍計度諸法而妄執有實我、實法,故稱能遍計。唯識三性中,遍計所執性之自性係由能遍計與所遍計所共形成。據攝大乘論本卷中之說,意識即是能遍計,此因意識能自行以名言薰習為種子,復於無邊之行相生起分別作用,故對一切萬法亦產生普遍的分別計度之作用。於諸識之中,安慧謂舉凡有漏之八識均為能遍計;護法則主張前五識與第八識無所執著,僅有第六、第七二識方屬能遍計。〔瑜伽師地論卷七十四、成唯識論卷八、成唯識論述記卷一本〕(參閱「末那識」1941、「意識」5449) p4298" - ↑ 가 나 운허, "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
"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 오팔무집(五八無執). 유식종에서는 8식 중 경계에 대하여 허망 분별을 일으켜 아(我)다, 법(法)이다라고 집착하는 능변계(能遍計)의 뜻이 있는 것은 제6식과 제7식뿐이라고 하는 말. 제7식은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하여 아집(我執)을 일으키고, 제6식은 온갖 법경(法境)에 대하여 아집ㆍ법집을 일으킴. 그러나 전5식과 제8식은 아집ㆍ법집이 없고 능변계하는 뜻도 없다 함. 이는 호법(護法)의 학설." 인용 오류: 잘못된<ref>
태그; "FOOTNOTE운허"[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9818DE8A888rowno5 六七能遍計(육칠능변계)]". 2013년 3월 2일에 확인"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 ↑ 운허, "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2013년 3월 2일에 확인
"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법처소생색(法處所生色)의 하나. 제6의식의 허망한 분별에 의하여 변현한 색. 곧 거북의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 등과 같이 변괴로 생긴 것들로 주관에 그려지는 바 실체가 없는 그림자." - ↑ 星雲, "遍計所起色". 2013년 3월 2일에 확인
"遍計所起色: 為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五種之一。指依第六意識之妄分別所變現之影像,如空華水月等無實體之諸色相。(參閱「法處所攝色」3389) p5617 "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4권. p. T31n1585_p0022a24 - T31n1585_p0022b06. 4근본번뇌(四根本煩惱)
"此意相應有幾心所。且與四種煩惱常俱。此中俱言顯相應義。謂從無始至未轉依此意任運恒緣藏識與四根本煩惱相應。其四者何。謂我癡我見并我慢我愛。是名四種。我癡者謂無明。愚於我相迷無我理故名我癡。我見者謂我執。於非我法妄計為我。故名我見。我慢者謂倨傲。恃所執我令心高舉。故名我慢。我愛者謂我貪。於所執我深生耽著。故名我愛。并表慢愛有見慢俱。遮餘部執無相應義。此四常起擾濁內心令外轉識恒成雜染。有情由此生死輪迴不能出離。故名煩惱。"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4권. pp. 216-217 / 583. 4근본번뇌(四根本煩惱)
"이 말나식과 상응하는 심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202) 우선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한다. 여기서 ‘함께한다’는 말은 상응의 의미를 나타낸다. 아득한 옛적부터 아직 전의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 이르기까지, 이 말나식은 자연적으로 항상 장식을 반연하고, 네 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한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아치(我痴)와 아견(我見) 및 아울러 아만(我慢)과 아애(我愛)’를 말한다. 이것을 네 가지 근본번뇌라고 이름한다. ‘아치(我痴)’는 무명을 말한다. 자아의 양상에 어리석어서 무아의 이치에 미혹한다. 따라서 아치라고 이름한다.203) ‘아견’은 아집을 말한다. 자아가 아닌 법에 대해서 망령되게 계탁하여 자아로 삼는다. 따라서 아견이라고 이름한다.204) ‘아만’은 거만함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를 믿어서 심왕으로 하여금 높이 올린다. 따라서 아만이라고 이름한다.205) ‘아애’는 아탐(我貪)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에 대해서 깊이 탐착(耽着)을 일으킨다. 따라서 아애라고 이름한다.206) (제5게송에서) ‘아울러[幷]’라고 말한 것은, 아만 · 아애가 아견 · 아만과 함께하는 일이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다른 부파가207) 상응하는 뜻이 없다고 집착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 네 가지가 항상 일어나서208) 안으로 심왕209)을 어지럽히고 혼탁하게 하며, 밖으로 전식(6식)을 항상 잡염되게 한다. 유정이 이것(번뇌)으로 인해 생사에 윤회하여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번뇌라고 이름한다.
203) 아치(我痴, ātmamoha)는 자기 본질의 이치[無我]를 모르는 근본적인 무지(無知) 곧 무명(無明)을 말한다. 무명은 초기불교 이래 4성제, 연기의 도리에 무지한 것으로 설명되었다. 유가유식학파도 근본적으로 이런 입장에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아의 이치에 미혹한 아치(我痴)야말로 근본적인 무명이며, 그것이 항상 말나식과 함께 작용한다고 하였다.
204) 아견(我見, ātmadṛṣṭi)은 자아(ātman)가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으로서, 살가야견(薩迦耶見, satkāya-dṛṣṭi:有身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의식이 5취온을 대상으로 해서 자아로 착각하여 나[我] · 나의 소유[我所]로 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205) 아만(我慢, ātmamāna)은 아견에 의해 설정된 자아를 의지처[所依]로 삼아서 자기는 존재한다고 교만하게 뽐내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에 아만은 5취온을 나 · 나의 소유로 집착하여 교만한 것을 뜻하였다. 유가유식학파에서는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자아로 인식함으로써 자아를 더욱 대상화하고, 대상화된 자기를 근거로 교만하게 뽐내는 것을 근본적인 아만으로 생각하였다.
206) 아애(我愛, ātmasneha)는 일상생활에서 갖가지 고통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또한 죽음의 공포를 부추기는 근본원인이 된다.
207) 설일체유부를 가리킨다.
208) 아치(我痴)가 근본원인��� 되어서 아견→아만→아애(我愛)의 순서로 생겨난다.
209) 제7식과 제8식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