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
37도품 三十七道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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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분류 · 불교 용어 |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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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정도(八正道, 산스크리트어: āryāṣṭāṅgamārga, 팔리어: p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영어: Noble Eightfold Path), 8성도(八聖道) 또는 8지성도(八支聖道)는 사성제 가운데 마지막의 도제에서 가르치는, 깨달음(멸제)을 성취하는 원인이 되는 "여덟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길, 수단 또는 실천 덕목"이다.[1] 7과 37도품의 마지막 그룹인 제7과의 수행법이다. 8정도의 반대를 8사(八邪) 또는 8사행(八邪行)이라 한다. 8정도를 청정한 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뜻에서 범행(梵行)이라고도 한다. 8정도를 구하는 것을 범행구(梵行求)라고 한다.[2][3]
팔리어에서 길(道)은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길이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길은 나머지 일곱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덟 개의 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일곱 개의 길이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하여지는, 서로 포섭하는 관계에 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팔정도의 영어 번역어도 'Noble Eightfold Path (고귀한 팔중의 길)'라고 하여 길(Path)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덟도 단순한 여덟(eight)이 아닌 팔중(eightfold, 八重)으로 표현하고 있다.[1]
팔정도의 여덟 구성요소 또는 여덟 개의 길은 다음과 같다.[1]
-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
- 정사유(正思惟) · 정사(正思): 바르게 생각하기
-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
-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
-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기
- 정정진(正精進) · 정근(正勤): 바르게 정진하기
- 정념(正念): 바르게 깨어 있기
- 정정(正定): 바르게 삼매(집중)하기
팔정도
8정도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성제 중 마지막 도제(道諦)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설명된 것이다. 고집멸도의 4성제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緣起)하는 항목을 합하여 구성되어 있다.[4]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1]
상좌부 불교에서는 8정도가 순차적인 단계가 아니라 완전한 깨달음 즉 열반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구성요소들을 나열한 것으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관계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실천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8정도를 크게 계(戒) · 정(定) · 혜(慧)의 3학(三學)으로 분류하여 보는데, 정견 · 정사유가 혜에 속하며, 정어 · 정업 · 정명이 계에 속하며, 정정진 · 정념 · 정정이 정에 속한 것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계 · 정 · 혜는 서로를 도와 깨달음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지만, 크게 보아 계에 의지하여 정을 득하고, 정에 의지하여 혜를 득한다고 본다.[5][6][7][8]
8정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견
정견(正見, 산스크리트어: samyag-drsti, 팔리어: sammā-ditthi)은 바른 견해라는 뜻이며, 엄밀한 뜻으로는, 인과의 도리,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연기법을 바르게 아는 지혜를 뜻한다. 이러한 뜻의 정견은 8사행 가운데 사견(邪見)의 반대이며, 또한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의 5견(五見) 가운데 사견의 반대이며, 10악(十惡) 가운데 사견의 반대이다. 이 경우, 정견은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12연기 · 4성제 · 3학 · 6바라밀로 대표되는 인과의 법칙 즉 연기법이라는 이치 또는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의미한다.[1][9][10][11] 한편, 모든 선법(善法)을 세간법과 출세간법으로 나눌 때, 12연기 · 4성제 · 3학 · 6바라밀은 출세간법에 속한다.[12][13][14] 즉 무루의 선법, 달리 말하면, 성인의 선법 즉 성인이 수행하는 선법 또는 완전한 성인 즉 부처가 되게 하는 선법에 속한다.
정견은, 보다 넓은 뜻으로는, 5견(五見)을 멀리 떠난 상태를 말한다.[9] 달리 말하면, 불교에서 인정하는 바른 세계관 또는 인생관 모두를 가리킨다. 즉 정견은 4성제와 연기법을 비롯한 모든 불교의 진리들에 대한 유루 · 무루의 지혜들을 통칭한다. 이 경우의 정견은 부정견(不正見) 또는 악견(惡見)의 반대이다. 이 경우, 정견은 수행이라는 측면에서는 갖가지 부정견을 약화시키거나 멀리 떠난 상태를 득하는 것을 의미한다.[1][9]
《대비바사론》·《구사론》 등에 따르면 이 후자의 보다 넓은 뜻으로서의 정견은 크게 유루정견(有漏正見)과 무루정견(無漏正見)으로 나뉜다. 유루정견은 세간정견(世間正見) 또는 세속정견(世俗正見)이라고도 하는데, 유루의 정견으로 유루혜에 속하며 다시 문혜 · 사혜 · 수혜의 3혜 또는 3혜에 생득혜를 더한 4혜로 나뉜다. 이들 유루혜는 범부의 지혜이며, 부정견 등의 번뇌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도 번뇌를 끊지는 못하는 지혜이다. 무루정견은 출세간정견(出世間正見)이라고도 하며 유학정견 · 무학정견으로 나뉘는데, 무루의 정견으로 무루혜에 속한다. 무루혜는 성인의 지혜이며, 부정견 등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 지혜이다.[9][15][16] 계율을 바탕으로 하여 유루혜 즉 문혜 · 사혜 · 수혜의 3혜를 닦는 것은 무루혜를 증득하는 길이 되며, 따라서 범부가 닦아야 할 바이다.[17][18][19][20][21]
정사유
정사유(正思惟) 또는 정사(正思)는 올바른 사고방식 또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즉, 항상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바르게 사유(思惟)하고 나 자신의 본분은 무엇인가, 나 자신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1]
정어
정어(正語)는 올바른 언어적 행위를 가리킨다.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고방식에 입각한 말은 올바른 말이 되며, 구체적으로는 행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거짓말(妄言 · 망언), 욕설(惡口 · 악구), 중상(兩舌 · 양설), 쓸데없는 말(綺語 · 기어)의 4가지를 행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으며, 행해야 할 것으로는 성실하고 정다운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들 수 있다.[1]
정업
정업(正業)은 올바른 행위를 가리킨다. 신(身: 몸) · 구(口: 입) · 의(意: 마음)의 3업을 바르게 하여, 사성제 · 연기의 법칙 · 인과의 법칙 등의 이치와 진리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정명
정명(正命)은 올바른 생계수단을 가리킨다. 재가자는 살생, 인신 매매, 마약거래, 술,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고,
출가자는 점을 치거나 관상, 천문, 풍수에 의존하여 생활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계수단이다.
정정진
정정진(正精進) 또는 정근(正勤)은 올바른 노력 또는 올바른 용기를 가리킨다.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길을 나아감으로써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1]
정념
정념(正念, 산스크리트어: samyak-smṛti, 팔리어: sammāsati) 즉 바른 기억은 세심한 염(念,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깨어 있음) 즉 주의력을 가지고 수행에 임하며, 또한 생활에서는 자신과 주변의 입장에 대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려 깊은 태도로 일에 임한다는 것을 뜻한다.[1]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인,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세친의 《대승오온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 등에 따르면 정념(正念)의 반대는 망념(妄念: 미망한 집착하는 생각)이 아닌, 실념(失念, 산스크리트어: muṣitasmṛtitā, 영어: forgetfulness) 또는 망념(忘念)이며, 이 두 낱말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두 '잊어버린 기억, 잊어버린 께어있음, 또는 잊어버린 마음챙김'인데 모두 '정념(正念)을 잃음'을 뜻한다.[22][23][24][25][26][27][28][29]
정념은 서양에서 마음챙김(MBSR)이란 명상법으로 유명하다.
정정
정정(正定)은 올바른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선정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해짐에 따라 이에 의해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정견(正見), 즉 올바른 견해 또는 지혜가 발현되며 이에 따라 정업(正業) · 정명(正命) 등의 올바른 행동과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1] 대승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선정 바라밀은 지혜 바라밀이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30][31][32]
같이 보기
참고 문헌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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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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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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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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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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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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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8정도,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8정도: 八正道 팔정도는 8지성도(八支聖道)라고도 하며 '8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성스러운 도(道)'라는 의미이다. 이 도가 파리어로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은 8개가 하나의 성스러운 도의 각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 따라서 8개 가운데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7개가 그 하나에 포함되어 동시에 행하여지고 있다는 것, 즉 상섭(相攝)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8정도는 4성체인 도체(道諦)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설명된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8종이다. (1) 정견(正見) ―― 올바른 견해라는 뜻으로서 불교의 올바른 세계관·인생관을 가리킨다. 즉 연기(緣起)의 도리라든가 4성체라든가 하는 불교의 근본적인 진리에 관한 지혜라는 뜻으로 그 체득·확립을 강조한 것이다. (2) 정사유(正思惟) ―― 올바른 사고방식, 올바른 마음 가짐을 말한다. 우리들은 항상 올바른 지혜에 의해서 바르게 사유(思惟)하고 자기의 본분은 무엇인가, 자기는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3) 정어(正語) ―― 바른 언어적 행위(言語的行爲)이다. 올바른 견해나 올바른 사고방식에 의한 말이라면 당연히 바른 말이 될 터이다. 구체적으로는 거짓말(妄言), 욕설(惡口), 중상(兩舌), 쓸데없는 말(綺語)의 4가지를 행하지 않을 것을 들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는 성실하고 정다운 말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한다. (4) 정업(正業) ―― 올바른 신체적 행위이다.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불륜(不倫) 등 잘못된 행위를 떠나 선행(善行)을 쌓는 것이다. (5) 정명(正命) ―― 올바른 생활이라는 것으로서 신(身)·구(口)· 의(意)의 3업을 바르게 하여 규칙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다. (6) 정정진(正精進) ―― 올바른 노력, 올바른 용기라는 것으로서 무엇을 하든지 용기와 노력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성공을 얻을 수 없고 사회적 진보도 없다는 것이다. (7) 정념(正念) ―― 올바른 상념(想念), 올바른 의식이라는 것으로서 자기의 입장, 주위의 입장은 언제나 염두에 두고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일에 임한다는 것이다. (8) 정정(正定) ―― 올바른 선정(禪定)이며 정신의 안정으로서 이에 의해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올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 사리자 설, 현장 한역 & T.1536, 제4권 〈4. 삼법품 ②〉. p. T26n1536_p0383a16 - T26n1536_p0383a20. 범행구(梵行求)
"梵行求云何。答離二交會說名梵行。八支聖道亦名梵行。於此義中意說八支聖道梵行。諸有於此八支聖道未得為得。諸求乃至勤求。是謂梵行求。" - ↑ 사리자 설,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6, T.1536, 제4권 〈4. 삼법품 ②〉. p. 89 / 463. 범행구(梵行求)
"(문) 범행구(梵行求)란 어떤 것인가?
(답) 두 사람의 교회(交會)를 여읜 것을 범행(梵行)이라 하며, 8지성도(支聖道)도 또한 범행이라 한다. 이 이치 가운데서 말하고 있는 뜻은 8지성도를 범행이라 한다. 이 모든 8지성도에 있어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모든 구하는 것과 나아가 부지런히 구하는 것까지를 범행구라 한다." - ↑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12인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Culavedalla Sutta: The Shorter Set of Questions-and-Answers (MN 44)”.
- ↑ Bhikkhu Bodhi. “The Noble Eightfold Path: The Way to the End of Suffering”. Access to Insight. 2013년 2월 4일에 확인함.
"The eight factors of the Noble Eightfold Path are not steps to be followed in sequence, one after another. They can be more aptly described as components rather than as steps, comparable to the intertwining strands of a single cable that requires the contributions of all the strands for maximum strength. With a certain degree of progress all eight factors can be present simultaneously, each supporting the others. However, until that point is reached, some sequence in the unfolding of the path is inevitable. Considered from the standpoint of practical training, the eight path factors divide into three groups: (i) the moral discipline group (silakkhandha), made up of right speech, right action, and right livelihood; (ii) the concentration group (samadhikkhandha), made up of right effort, right mindfulness, and right concentration; and (iii) the wisdom group (paññakkhandha), made up of right view and right intention. These three groups represent three stages of training: the training in the higher moral discipline, the training in the higher consciousness, and the training in the higher wisdom." - ↑ 운허, "三學(삼학)". 2013년 2월 19일에 확인
"三學(삼학): 불교를 배워 도를 깨달으려는 이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1) 계학(戒學). 행위와 언어에서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몸을 보호하는 계율. (2) 정학(定學). 심의식(心意識)의 흔들림을 그치고,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를 나타내는 법. (3) 혜학(慧學). 번뇌를 없애고, 진리를 철견(徹見)하려는 법. ⇒계정혜(戒定慧)" - ↑ 운허, "戒定慧(계정혜)". 2013년 2월 19일에 확인
"戒定慧(계정혜): 계율ㆍ선정ㆍ지혜의 준말. 이를 총칭하여 3학(學). 계는 몸ㆍ입ㆍ뜻으로 범할 나쁜 짓을 방지하는 것. 정은 산란한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게 하는 것. 혜는 진리를 깨닫는 지혜. 이 셋은 서로 도와 증과(證果)를 얻는 것이므로, 계에 의하여 정을 얻고, 정에 의하여 지혜를 얻는다. 이를 경ㆍ율ㆍ논 3장에 배대하면, 경은 정학(定學), 율은 계학(戒學), 논은 혜학(慧學). ⇒삼학(三學)" - ↑ 가 나 다 라 星雲, "正見". 2013년 2월 19일에 확인
"正見: 梵語 samyag-drsti,巴利語 sammā-ditthi。如實了知世間與出世間之因果,審慮諸法性相等之有漏、無漏慧,稱為正見。係八正道之一,十善之一。為「邪見」之對稱。即遠離或有或無之邪見,而採取持平正中之見解,如遠離身見、邊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等「五不正見」之見解皆屬正見。故廣泛言之,凡為佛教所認可之道理,皆屬正見。據大毘婆沙論卷九十七載,正見可分為二類,即:(一)有漏正見,又作世俗正見。即與意識相應之有漏善慧,係有漏有取者,故轉向善趣,招未來可喜所欲之果。(二)無漏正見,又作出世間正見。即盡無生智所不攝之意識相應善慧,如八種無漏忍、有學八智、無學正見等。〔雜阿含經卷二十八、順正理論卷六、大智度論卷二十二、俱舍論卷二、成實論卷十六見智品、大乘義章卷八本〕 p1988 " - ↑ 星雲, "邪見". 2013년 2월 19일에 확인
"邪見: 梵語 mithyā-drsti,巴利語 micchā-ditthi。指不正之執見,主要指撥無四諦因果之道理者。係八邪行之一,十惡之一,十隨眠之一,五見之一。以為世間無可招結果之原因,亦無由原因而生之結果,而謂惡不足畏,善亦不足喜等之謬見,即是邪見。蓋俱舍家謂撥無因果為邪見;唯識家則主張撥無因果及四見以外之所有邪執,均稱為邪見。
另據大毘婆沙論卷四十九載,五見雖同為邪推度,但因邪見之「無行相」過患特重,故特稱之為邪見。又謂邪見壞事,謗因果及三寶,壞法恩、生恩,起法怨、生怨,並破壞現量,為暴惡之見,故別立此名。〔俱舍論卷十九、成唯識論卷六、法蘊足論卷一、卷十、成實論卷十、阿毘達磨順正理論卷四十六、瑜伽師地論卷八〕(參閱「八邪行」283、「十善十惡」468、「五見」1099) p3033" - ↑ 星雲, "八邪行". 2013년 2월 19일에 확인
"八邪行: 「八正道」之對稱。即身、語、意等所犯之八種誤謬。又作八邪支、八邪法。略稱八邪。即:(一)邪見,指不信因果、功德、父母、聖人等之見解。(二)邪志,又作邪思惟,指欲、恚、害等之思惟。(三)邪語,指妄語、兩舌、惡口、綺語等。(四)邪業,指殺生、不與取、邪淫等。(五)邪命,指不如法之生活。(六) 邪方便,又作邪精進,指為惡事所作之方便精勤。(七)邪念,指不如法之觀念。(八)邪定,指非正定之定。以上八者,乃凡夫外道所常行,求涅槃者悉皆捨離。〔雜阿含經卷二十八、中阿含經卷四十九、八正道經、維摩經弟子品〕(參閱「八正道」280) p283 " - ↑ 운허, "善法(선법)". 2012년 11월 12일에 확인
"善法(선법): ↔악법. 선한 교법. 5계ㆍ10선ㆍ3학ㆍ6도 등 이치에 맞고, 자기를 이익케 하는 법." - ↑ 星雲, "善法". 2012년 11월 12일에 확인
"善法: 梵語 kuśalā dharmāh。指合乎於「善」之一切道理,即指五戒、十善、三學、六度。為「惡法」之對稱。五戒、十善為世間之善法,三學、六度為出世間之善法,二者雖有深淺之差異,而皆為順理益世之法,故稱為善法。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卷三十五(大二四‧三八二下):「國界人民,日見增長,善法無損。」〔往生要集卷中〕" - ↑ 운허, "出世間法(출세간법)". 2012년 11월 12일에 확인
"出世間法(출세간법): 3승들이 수행하는 4제ㆍ12연기ㆍ6도(度) 등의 행법(行法)."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권. p. T29n1558_p0010c03 - T29n1558_p0010c16. 8견(八見)
"頌曰。
眼法界一分 八種說名見
五識俱生慧 非見不度故
眼見色同分 非彼能依識
傳說不能觀 彼障諸色故
論曰。眼全是見。法界一分八種是見。餘皆非見。何等為八。謂身見等五染污見。世間正見。有學正見。無學正見。於法界中此八是見。所餘非見。身見等五隨眠品中時至當說。世間正見。謂意識相應善有漏慧。有學正見。謂有學身中諸無漏見。無學正見。謂無學身中諸無漏見。譬如夜分晝分有雲無雲睹眾色像明昧有異。如是世間諸見有染無染。學無學見。觀察法相明昧不同。"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권. p. 84-86 / 1397. 8견(八見)
"게송으로 말하겠다.
안계와, 법계의 일부인
여덟 가지를 설하여 '견(見)'이라 이름하며
5식과 함께 생기하는 혜(慧)는
비견(非見)이니, 판단[度]하지 않기 때문이다.
眼法界一分 八種說名見
五識俱生慧 非見不度故
색을 보는 것은 동분의 안근으로
그것을 의지처로 삼는 식(識)이 아니니
전설에 의하면, 은폐된 온갖 색을
능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眼見色同分 非彼能依識
傳說不能觀 被障諸色故
논하여 말하겠다. 안근은 모두 바로 '견(見)'이며, 법계의 일부분인 여덟 가지 종류도 '견'이다. 그리고 그 밖의 것은 모두 비견(非見)이다. 어떠한 것이 여덟 가지인가? 이를테면 유신견(有身見) 등의 다섯 가지 염오견(染汚見)과 세간의 정견(正見)과 유학(有學 : 무루지를 성취한 성자)의 정견과 무학(無學 : 성도를 모두 성취한 성자, 즉 아라한)의 정견이니, 법계 가운데 바로 이러한 여덟 가지가 '견'이며, 그 밖의 법계와 나머지 16계는 모두 비견이다. 여기서 다섯 가지 염오견의 상에 대해서는 마땅히 「수면품(隨眠品)」 중에서 설하게 될 것이다.76) 그리고 세간의 정견이란, 이를테면 의식상응의 선인 유루의 뛰어난 혜(慧)를 말한다. 유학의 정견이란, 이를테면 유학의 소의신 중의 온갖 무루의 견을 말한다. 무학의 정견이란, 이를테면 무학의 소의신 중의 온갖 무루의 견을 말한다. 이를 비유하자면 한밤중과 한 낮과 구름이 끼었을 때와 구름이 없을 때에 온갖 색상(色像)을 관찰하면 밝고 어둠의 차이가 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세간의 온갖 '견'으로서 염오함이 있거나 염오함이 없는 것과, 유학의 견과 무학의 견, 그 같은 온갖 견의 법상(法相)을 관찰하면 그 밝고 어둠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77)
76) 유신견 등의 5견이란 유신견(또는 薩迦耶見, 소의신을 실유라고 집착하는 견해), 변집견(邊執見, 斷·常 두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 사견(邪見, 인과의 도리를 부정하는 견해), 견취(見取, 그릇된 견해를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 계금취(戒禁取, 그릇된 계행을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를 말하는 것으로, 본론 권제19(p.867)이하에서 상론한다.
77) 즉 다섯 가지 염오견은 유루이면서 번뇌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구름(번뇌)이 낀 한밤(유루) 중에 색상을 관찰하는 것과 같고, 세간의 정견은 유루이지만 번뇌가 없기 때문에 구름이 끼지 않은 한밤 중에 색상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또한 유학의 정견은 무루지를 획득하였으나 번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구름이 낀 한 낮에 색상을 관찰하는 것과 같고, 무학의 정견은 더 이상 번뇌가 없기 때문에 구름이 끼지 않은 한낮에 색상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2권. p. T29n1558_p0116b29 - T29n1558_p0116c08. 3혜(三慧)와 성도(聖道)
"已辯諸諦。應說云何方便勤修趣見諦道。頌曰。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
論曰。諸有發心將趣見諦。應先安住清淨尸羅然後勤修聞所成等。謂先攝受順見諦聞。聞已勤求所聞法義。聞法義已無倒思惟。思已方能依定修習。行者如是住戒勤修。依聞所成慧起思所成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2권. p. 1014 / 1397. 3혜(三慧)와 성도(聖道)
"이제 마땅히 어떠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야 견도제(見道諦), 즉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이는
마땅히 계(戒)에 머물면서 문(聞)·사(思)·수(修)로써
성취되는 바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말과, 말과 뜻과, 뜻이 그것의 경계이다.
將趣見諦道 應住戒勤修
聞思修所成 謂名俱義境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정으로서 발심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羅,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에 수순하는 청문(聽聞)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義]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해야 하니, 사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에 의지하여 수습(修習)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成慧)에 의해 사소성혜(思所成慧)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所成慧)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 실역인명(失譯人名) & T.1507, 제2권. p. T25n1507_p0036b23 - T25n1507_p0036b27. 속계(俗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道戒: 출세간의 선법)
"夫戒有二。有俗戒有道戒。五戒十善為俗戒。三三昧為道戒。二百五十戒至五百戒。亦是俗戒。四諦妙慧為道戒也。但行安戒不出三界。以慧御戒。使成無漏乃合道戒。" - ↑ 실역인명(失譯人名), 이태승 번역 & K.973, T.1507, 제2권. p. 32 / 114. 속계(俗戒: 세간의 선법)와 도계(道戒: 출세간의 선법)
"대체로 계에 두 가지가 있다. 속계(俗戒)와 도계(道戒)이다. 5계와 10선(善)은 속계를 이루며, 3삼매는 도계를 이룬다. 250계에서 500에 이르는 이것도 속계이며, 4제(諦)의 묘혜는 도계를 이룬다. 단지 계를 행하는 데 안주해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다. 혜로써 계를 제어하고 무루를 성취시켜야 곧 도계에 합치한다." - ↑ 星雲, "三慧". 2012년 11월 13일에 확인"三慧: 梵語 tisrah prajñāh。指聞思修三慧。即簡擇事理之三種精神作用。即:(一)聞慧(梵 śrutamayī prajñā),即由三藏十二分教或善知識處聞知,能生無漏聖慧,故稱聞所成慧。此為聲聞所成就。(二)思慧(梵 cintāmayī prajñā),即由思惟所聞所見之道理而生之無漏聖慧,為緣覺所成就。(三)修慧(梵 bhāvanāmayī prajñā),乃依修習而生之無漏聖慧,為菩薩所成就。
其中,聞慧為三慧之因,眾生若受持轉讀,究竟流布諸經藏,則生慧;依此聞慧則生思慧;依思慧則有修慧。此乃斷煩惱、證得涅槃之過程,猶如依種生芽,依芽生莖,依莖轉生枝葉花果。故前二慧為散智,僅為發起修慧之助緣;修慧則為定智,具有斷惑證理之作用。若以大乘菩薩之階位而言,十住位得聞慧,十行位得思慧,十迴向位得修慧。另就毘曇之界繫而言,欲界有聞、思二慧,因欲界為不定界,非修地,亦非離染地,若欲修時則墮思慧中,故此界無修所成慧。色界有聞、修二慧,無色界唯有修所成慧;因色、無色界是定界,是修地,亦是離染地,若欲思時已墮修中,故此二界無思所成慧。又無色界不用耳根聽聞佛法,故無聞所成慧。〔優婆塞戒經卷一、瑜伽師地論卷二十八、成實論卷十六、集異門足論卷五、大毘婆沙論卷四十二、俱舍論卷二十二、佛地經論卷一〕" - ↑ "실념(失念)",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1월 3일에 확인.
- ↑ 황욱 1999, 71. 실념(失念)심소쪽
"‘失念’은 오랜동안 지은 바와 말했던 바와 생각했던 法과 義에 대하여 染汚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써 體로 삼고, 不忘念을 장애하는 것으로써 業을 삼는다. 즉, 모든 반연하는[所緣] 것들을 능히 기억하지 못함을 그 性用으로 삼고, 그것으로 인하여 正念을 장애하여 散亂의 所依가 됨을 그 業用으로 삼는다.254) 이 심소도 念·癡의 한 부분[一分]으로 따로 別體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이를 ‘忘念’이라는 술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번뇌와 상응하는 생각을 體로 하고, 어지러움[散亂]에 의지가 되어주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255)
254) ‘失念’의 性用은 모든 所緣境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작용을 말하고, 그 業用은 正念을 장애하여 散亂을 일어나게 하는 작용을 말한다. 즉, 失念은 기억력을 잃음으로 말미암아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을 방해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255)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665中). “何等忘念。謂諸煩惱相應念為體。散亂所依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7권. p. T31n1585_p0034b22 - T31n1585_p0034b28. 실념(失念)심소
"云何失念。於諸所緣不能明記為性。能障正念散亂所依為業。謂失念者心散亂故。有義失念念一分攝。說是煩惱相應念故。有義失念癡一分攝。瑜伽說此是癡分故。癡令念失故名失念。有義失念俱一分攝。由前二文影略說故。論復說此遍染心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7권. p. 336 / 583. 실념(失念)심소
"무엇이 ‘실념(失念)심소’288)인가? 모든 인식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기억[正念]을 장애하여 산란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89) 실념(失念)은 염(念)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이것이 번뇌와 상응하는 염(念)심소라고 말하기290)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91) 실념(失念)은 치(癡)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유가사지론』에서 이것이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292) 때문이다. 치심소가 기억하는 것을 잃게 하기 때문에 실념이라고 이름한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93) 실념은 두 가지[俱]의294) 일부분에 포함된다. 앞에서 인용한 두 문장에 그림자처럼 생략해서 말한 것에 의하기 때문이고, 논서에서 다시 이것이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288) 실념(失念, muṣitasṁṛtitā)심소는 기억하지 못하는 심리작용으로서,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기분이 산만하여 선법을 지속적으로 상기하지 못한다. 이것은 염(念)과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289)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90)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고려대장경』 16, p.287中:『대정장』 31, p.699中).
"忘念者。煩惱相應念為體。散亂所依為業。"
291)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92)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 604中).
"忘念散亂惡慧是癡分故一切皆是世俗有。"
293) 호법의 정의이다.
294) 염(念) · 치(癡) 심소를 가리킨다." - ↑ 星雲, "失念". 2012년 11월 3일에 확인. 실념(失念)심소
"失念: 梵語 musita-smrtitā 之意譯。又作忘念。乃心所(心之作用)之名。百法之一。為「念」之對稱。指對於所緣境及諸善法不能明白記憶之精神作用。唯識宗將其視為二十隨煩惱中八大隨煩惱之一。關於其體則有三說:(一)為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所說,以念為體,依此之故而為念之一分。(二)為瑜伽師地論卷五十八所說,以癡之等流為體,依此之故而為癡之一分。(三)併取前述之二種,以念與癡之一分為體。〔成唯識論卷六、顯揚聖教論卷一、大乘五蘊論〕"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5b03 - T31n1605_p0665b04. 실념(失念)심소
"何等忘念。謂諸煩惱相應念為體。散亂所依為業。" - ↑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9b09 - T31n1606_p0699b10. 실념(失念)심소
"忘念者。煩惱相應念為體。散亂所依為業。"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9b22 - T31n1612_p0849b23. 실념(失念)심소
"云何失念。謂染污念於諸善法不能明記為性。" - ↑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 > 6바라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1c28 - T31n1613_p0852a02. 삼마지(三摩地)
"云何三摩地。謂於所觀事。心一境性。所觀事者。謂五蘊等。及無常苦空無我等。心一境者。是專注義。與智所依為業。由心定故。如實了知。"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6 / 24. 삼마지(三摩地)
"무엇을 삼마지(三摩地)라고 하는가?
관(觀)하는 일에서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무는 것[心一境性]을 말한다. 관하는 일이란 5온 등과 무상함 · 괴로움 · 공 · 무아 등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하는 것이다.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문다는 것은 여기에 오로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지혜가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마음이 정(定)에 있기 때문에 여실하게 요별하여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