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 (숙)
생애
편집형법에 뛰어나 문제 때 태자 유계를 섬겼다. 장구는 비록 형법을 익혔으나 어진 사람이었고, 유계가 즉위한 후에는(경제) 더욱 대우받아 항상 관직이 구경(九卿)에 이르렀다.
무제 때인 원광 4년(기원전 131)[1], 면직된 한안국의 뒤를 이어 어사대부에 임명되었다.
장구는 벼슬한 이래 죄인을 문초할 것을 상주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어진 자를 관직에 앉힐 뿐이었다. 관원들은 장구를 어진 자라고 생각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또 장구는 죄인에게 형벌을 내리는 판결문이 오면 가능한 한 돌려보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눈물을 흘리며 봉하였다.
늙어서 병이 위중해지니 관직을 사퇴하길 청하였고, 무제는 상대부(上大夫)의 봉록을 내려 양릉(陽陵)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게 하였다. 자손들은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다.
출전
편집각주
편집전임 광의 |
전한의 중위 기원전 140년 ~ ? |
후임 정불식 |
전임 한안국 |
전한의 어사대부 기원전 131년 음력 9월 ~ 기원전 126년 |
후임 공손홍 |